매일신문

만남에 서툰 세대 연애도 배워야 하나

책 보고, 과외 받고… 20대, 만남을 두려워 마라

이채근 기자
이채근 기자

종합편성채널 JTBC의 '썰전'에서 대중문화에 퍼져 있는 '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 패널이 한탄조로 내뱉은 말이 있다. "우리 조상님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사랑하고 애 낳고 그랬는데…." 지루한 근현대사 이야기를 꺼내면 이상할 수 있겠지만,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단야와 남조선노동당을 만든 박헌영, 그리고 그의 아내 주세죽과의 인연은 드라마 극본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고, 소설가 김유정의 '명창 박록주'에 대한 짝사랑은 지금도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썰전'의 그 패널이 한 말은 경제가 어렵고 취업도 안 되는 요즘 20대들 사이에서 연애가 사치로 여겨지는 분위기에 대한 패널들의 일침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지 않고 있거나 연애할 마음을 아주 접은 것은 아니다. 주말 밤 동성로 로데오골목의 클럽 안에서는 청춘남녀들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기 위해 필사의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연애와 관련된 엄청난 양의 글과 사진들이 공유되고 있다. 그만큼 이 시대의 젊은이들 또한 이전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연애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왠지 요즘 20대들에게 연애는 이래저래 두렵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 버렸다.

◆사업 아이템이 된 연애

대구 시내의 대형 서점에는 연애에 관한 책들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책의 저자들 대부분은 심리상담가, 전문 연애코치를 자처하는 사람들로, 책에는 이들이 연구 또는 상담을 통해 밝혀낸 남녀의 심리와 상황별 대처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용실에서 볼 수 있는 여성잡지의 연애상담 코너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TV는 책이 연애를 다루기 훨씬 전부터 연애를 소재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찔한 소개팅' '커플 브레이킹'과 같이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19금'을 걸고 하는 연애코칭 프로그램이 대세다. 첫 물꼬를 튼 것은 JTBC의 '마녀사냥'. 자신을 헷갈리게 하는 이성의 행동에 대해 '이것은 사랑이 맞다'는 의미로 그린라이트를 켜면서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그린라이트가 켜졌다. 이후 여러 케이블TV 채널에서 연애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애 컨설턴트나 연애 칼럼니스트들은 전국 각지를 돌며 '연애특강'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에게 데이트 방법이나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강의한다. 26일 대구 시내 한 백화점에서 '마녀사냥'의 패널로 유명한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씨의 연애특강이 열릴 예정이다. 백화점 회원들과 일정 구매금액 이상을 구매한 고객에게 강의 티켓이 배부되는데 이 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생각보다 문의전화가 꾸준하게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픽업 아티스트'가 논란이 된 적도 있다. 픽업 아티스트는 연애에 서툰 남성들을 대상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2000년대 중반 서울 카페와 클럽 등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 픽업 아티스트 학원 홈페이지에는 일대일 카카오톡 컨설팅이 약 5만원, 헤어진 연인들을 위한 재회 컨설팅이 약 10만원이라는 안내가 나와 있었다. 한 픽업 아티스트 강사는 "기존의 연애 상담사들이 심리학 이론 등에만 초점을 맞춰 현실에서 동떨어진 상담을 했다면 픽업아티스트 출신의 연애 강사들은 실전 연애에 필요한 비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더 나아가서는 짝사랑에 고심하거나 헤어진 연인과 인연을 다시 잇기 위해 '연애조작단'을 고용하기도 한다. 실상 연애조작단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청혼 이벤트 업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연애조작단을 경험한 이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연애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이런저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애사업'은 계속 성업 중이다.

◆사랑도 과외받아야 하는 시대

막상 연애특강, 연애서적, 연애조작단과 같은 것들을 이용해 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실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랑에 대한 어떤 해답을 얻으려고 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연애특강을 들었던 대학생 김모(22'여) 씨는 "학교에서 연애특강을 한대서 솔로인 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막상 들은 건 연애를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남녀 간 심리 차이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며 "뭔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간 느낌"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지금처럼 20대들 사이에서 연애코칭이나 특강 등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현재 젊은이들이 처한 사랑과 현실에 대한 복잡미묘한 상황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지금의 20대들은 "시간과 돈이 없어서 연애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공부해서 장학금을 타야 되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대야 하는 상황에서 연애에 시간과 돈을 들인다는 것은 사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머릿속 생각일 뿐 실제 마음은 외롭고 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 헤어지더라도 빨리 상처를 치유해 원래 살던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책, 인터넷, TV 프로그램을 통해 사랑을 예습'복습하고 심지어는 연애 전문가에게 과외까지 받는 것이다. 한 연애전문 강사는 "요즘 20대들은 연애에 대해 '정답'을 찾으려는 모습이 있다"며 "처음 연애는 서툴기 마련인데 서툴게 보이지 않으려고 전문가의 조언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연애는 스펙이 아니다

이처럼 20대들이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과외를 받으면서까지 연애를 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연애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이상한 시선들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단적인 예로 20대 중반이 되도록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일컬어 '마법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싱글 생활을 오래해서 도를 닦은 느낌일 테니 마법이나 도술도 부리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다. 이 말은 결국 '연애는 남들 다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남들 다 하는 연애를 하지 못하는 너는 특이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쯤 되면 연애는 인연이 다가올 때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20대 때 하지 못하면 안 되는 일'이 돼 버린다. 연애상담강사 김영수 씨는 "사람들이 대학교 3, 4학년이 됐는데도 '애인이나 이성친구가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조금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며 "연애라는 것도 인간관계의 한 부분이다 보니 이성친구가 취업을 준비할 나이가 될 때까지도 없다면 '사람을 대할 때 어색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애는 인간이 나와 다른 성에 대해 느끼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이 생겼을 때 진행하는 행동이지 20대 때 해야 하는 과업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계발과 경쟁에 몰린 지금의 젊은 세대가 연애를 마치 군 복무나 취업처럼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해 압박을 받는다는 점이다. 김영수 강사는 "연애는 스펙처럼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며 "서툴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 사랑의 감정이 생기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