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칠세부동석을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서는 이성과의 첫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커피숍에 모여 소지품을 꺼내놓으며 하던 단체 미팅에서 운 좋게 '킹카' 혹은 '퀸카'를 만나기도 했다. 후배에게 커피값 1천원을 빌려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을 수도 있었다.
정보통신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 '만남의 역사'도 진보를 거듭하게 된다. PC통신과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대별되는 소개팅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만남의 '수단'이 변모하면서 만남의 '내용' 혹은 '깊이'도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1980년대까지: 소개팅의 태동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소개팅의 역사는 3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결과 1987년의 한 일간지에 '오순도순 "소개팅" 유행'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가 소개팅을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최근 남녀 대학생들 사이에 맞선식 교제로 '선팅' '소개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이 같은 풍조는 자율화의 바람을 타고 고교 시절에 이미 집단미팅을 경험했던 대학생들이 한 사람의 이성을 오랫동안 사귀려는 자세에서 2, 3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전하고 있다.
소개팅의 방식은 주선자 친구가 서로에 대해 알려주면 만나 차 마시고 식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소개팅을 경험한 이들은 "적어도 소개팅은 주선자가 신상을 확실히 알려준 다음에 만난다"며 "전문 중매인들이 하는 맞선이나 경직된 분위기의 그룹미팅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라서 선호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중반: PC통신과 삐삐의 등장
'주선자 없는 소개팅'의 시작은 1990년대 초반 PC통신과 삐삐가 등장하면서부터다. 하이텔과 천리안과 같은 PC통신사들은 '싱글탈출'(천리안), '나우콤팔'(나우누리)와 같은 만남 주선 서비스를 열어 직접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PC통신의 동호회 기능을 이용해 만남을 주선하는 경우도 흔히 보였다. 오후 11시쯤 되면 당시 젊은이들은 PC통신에 접속해 채팅방을 만들고 밤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젊은이들은 PC통신의 채팅방을 통해 이성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서로 호감이 생기면 영화 '접속'의 주인공처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삐삐 또한 이성 간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도구로 사용됐다. 이른바 '삐삐팅'이라는 방식이 그것이다. 삐삐팅은 자신과 관계없는 임의의 번호를 호출한 후 전화가 연결되면 서로 나이, 학교를 물어보고 만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PC통신과 접목돼 회원의 신상과 삐삐번호를 올리면 그 번호를 본 이성이 삐삐를 쳐 만나는 방식도 한때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90년대 초반은 정보통신이 또 다른 월하노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세이클럽'에서 만났어요
1990년대 후반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리자 소개팅과 만남의 양상도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 옮겨져 갔다. 당시 '하늘사랑'과 '세이클럽'과 같은 채팅 사이트와 '아이러브스쿨' '다모임'과 같은 동창 찾아주는 사이트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장소로 각광받았다. 만남의 양식은 PC통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웹 환경으로 옮겨지면서 '파란 창과 하얀 글씨'로 대변되는 PC통신 채팅창의 단조로움을 떠나 글자 색깔부터 폰트까지 다양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점과 '아바타'를 이용해 자신과 닮은 모양의 캐릭터를 꾸며 채팅에 참가한다는 점이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채팅사이트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위해 사이트에 채팅방을 개설하고 상대방을 초청해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다. 네티즌들은 채팅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 인연을 만나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래서 선택된 것이 바로 인스턴트 메시지 메신저였다.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메신저로는 'MSN메신저' '타키' '버디버디' 등이 있었다. 채팅사이트에서 이성과 이야기하다 마음에 들면 "여기서 이야기하지 말고 메신저로 이야기하자"며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준다. 서로 메신저에 접속하면 설령 상대방이 채팅사이트에 접속하지 않더라도 대화를 걸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는 차단도 할 수 있어 인터넷상에서 귀찮게 집적대는 상대를 떼어내는 데도 메신저가 유용한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중반: 미니홈피 파도 타다 보면 인연이…
우리나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싸이월드'의 일촌 파도타기 기능은 인연을 찾으려고 하는 네티즌들의 환호를 받았다. 싸이월드는 친한 사람들끼리 '일촌맺기'를 해 다른 사람의 미니홈피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를 '파도타기'라고 불렀다. 한때 친구의 미니홈피 속 사진을 보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댓글을 통해 신상을 파악한 뒤 파도타기를 통해 이성의 미니홈피에 도착해 쪽지를 보내거나 방명록에 글을 남겨 인연을 맺으려는 시도가 많았다.
하지만 미니홈피 파도타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상대방의 신상정보가 너무 쉽게 타인에게 공개돼 사생활 침해의 부담이 컸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니홈피 파도타기로 누군가가 자꾸 미니홈피에 글을 남기고 쪽지를 보내 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현재: 지금은 애플리케이션 시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소개팅과 만남의 양상은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했다. 전통적 소개팅 방식에서는 '카카오톡'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주선자는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어 소개할 두 사람을 부른다. 단톡방에서 주선자는 서로를 간단히 소개한 후 단톡방을 나간다. 그렇게 남은 두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락을 하지 않거나 마음에 들면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방식이다. 서로 대면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전까지 소개했던 PC통신과 인터넷 채팅을 통한 만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존에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소개팅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점은 기존 방식과 차이가 있다.
애플리케이션이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폰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 검색창에 '소개팅'이라고 치면 수백 개의 애플리케이션이 검색된다. 특히 '이음' '옷깃' '정오의데이트'와 같은 애플리케이션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이용 중이며, 이 중 몇몇 애플리케이션들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정요금을 지불해야 함에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만남을 원하는 사람이 자신과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고, 자신의 사진을 공개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선택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만남이 이뤄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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