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풀밭

곽재구(1956~ )

비와

밤의

격렬한 사랑이 지나간 뒤

아침 국경 마을에

페르시아 보석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의 풀밭들이

신비한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물방울 모양의 보석들을

한 알 한 알 햇살에 비춰보며

페르시아의 상인들은

인샬라

인사를 하고

초승달 모양의 부리를 지닌

노란 새가 한 마리

밤과 비가 빚은

손거울만한 호수위에

자신의 모습을 새기고 있다

-시집 『와온 바다』, 창비, 2012년

시는 예술이며 예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다. 사막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사막에 비가 내리는 일은 일대 사건일 것이다. 사막에 밤새 비가 내린 뒤 아침이 온다. 풀잎에 맺힌 이슬은 보석같이 이름다울 것이다. 터번을 쓴 아라비아 상인은 보석을 햇살에 비춰 보며 노란 새는 웅덩이에 고인 물에 자신을 비춰 본다. 비 갠 뒤의 아침, 그 신선함이 몸으로 느껴진다. 이국적이며 동화적인 풍경화가 신비의 미학을 창조하고 있다.

시인 kweon51@cho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