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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대구서 순국한 전북 임실 의병장 이석용

"소위 일왕 명치(明治)와 총독을 죽이지 못하고 또 동경(東京)과 대판(大阪)을 불사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원통할 뿐이다." 187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내는 일제에 저항하며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수십 차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붙잡혔으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국권회복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굽히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아 1914년 오늘 36세 젊은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의병장 정재(靜齋) 이석용(李錫庸)의 최후 진술이다.

그는 1904년 터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조선에 대한 간섭을 노골화하고 1907년 군대를 강제 해산하는 등 나라를 뺏기 위한 검은 야욕을 드러내자 항일에 나섰다. 항일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1907년 9월 마이산에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왜인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며 결의를 다진 후 곳곳을 돌며 1909년 9월까지 의병 전투를 벌였다. 수많은 싸움에서 열세의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적병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잠행하며 유랑을 하던 중 1912년 고향에서 붙잡혔고, 사형선고 뒤 대구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의병활동에 대한 진중일기로 남겼는데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靜齋先生湖南倡義日錄)으로 간행됐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고 서거 100주년을 맞아 '이석용 의병장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학술대회 등 다양한 추모사업을 추진하며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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