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선생님 다 들려요!

혼자 살던 한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다"며 119에 전화를 건 뒤 곧바로 의식을 잃고는 응급실로 실려왔다. 투석이나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했고, 만에 하나 사망했을 때 후속절차 등에 대해 보호자와 상의해야 했다. 하지만 연락이 닿는 보호자가 없다고 한다. 마냥 치료를 미룰 수 없어서 일단 시작하고, 경찰에 의뢰해 보호자 연락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며칠 후 경찰이 수소문한 끝에 자식들 연락처를 알려왔다. 하지만 전화를 했는데 "30년째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내 어머니지만 나는 책임질 수 없으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그 뒤로는 전화해도 받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악화도 호전도 보이지 않고 혼수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어느 날 회진을 하던 중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눴다. "보호자 연락은 닿았나요?" "예, 연락이 되긴 했는데…. 아들이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몇 시간 후 할머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워낙에 병세가 중하고 고령인지라 할머니의 죽음이 갑작스럽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불편했다. '혹시 아침에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를 할머니가 들으셨나? 혼수상태에서도 청력은 남아있지 않을까?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삶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렸나?'

인간이 가진 다섯 가지 감각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바로 청각이라고 한다. 실제로 심각한 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환자들 중에서 "저승을 체험하고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마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서 자신과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본 것 같은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말로 영혼이 유체이탈을 해서 그렇다'는 주장과 '의식이 없어도 청력은 끝까지 남아 주위 상황을 듣고 기억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 알 수는 없지만.

실제로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오랫동안 누워있는 환자에게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헤드폰을 통해 들려주던 아주 효심이 지극한 보호자를 본 적도 있다. 생의 마지막까지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즐기다가 숨을 거뒀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가 하는 말들은 누군가 듣게 되고, 그 말이 비수가 될 수도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격려와 희망의 말을 해주는 것이 의사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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