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시간은 있었는데 아무도 구하려 들지 않았다

시간은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구할 생각은 않았다.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 당시 촬영한 9분 45초짜리 동영상을 뒤늦게 공개했다. 처음 달려온 구조보트에 가장 먼저 올라탄 것은 승객의 안전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선장이 일찍 탈선 명령이라도 내렸더라면,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구조선에 올라타기에 앞서 선실의 승객부터 구하자고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무책임했고 해경은 무능력했다.

첫 구조 요청은 오전 8시 52분 학생이 했고 오전 9시 30분 첫 경비정이 도착했다. 경비정 도착 후 배가 완전 뒤집힌 오전 10시 31분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이 긴 시간 승객들은 '절대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선실에서 기다린 것이 전부였다. 오전 10시 17분, 선실에 갇혀 있던 학생의 마지막 문자는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였다.

아이들은 이보다 훨씬 앞선 9시 4~5분 이미 '우리 진짜 죽을 것 같아' '진짜로 배 기울고'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줘'라는 등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선장은 대피 방송조차 외면했다. 구조 책임이 있는 해경 역시 선체에 진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탈출을 독려하지도 않았다.

첫 경비정이 도착했을 때만 해도 조금이나마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어렵게 선실에서 버티고 있었다. 배는 5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좌현 3'4층 객실도 아직은 물에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이 정도 배가 기울었다면 자력 탈출은 불가능하지만 구조는 가능했다. 누군가는 선실 안으로 들어가든지, 선실 유리를 깨서라도, 소방 호스를 풀어서라도 구했어야 했다. 어느 한 선원이나 해경이 객실 안에 갇혀 있을 승객들을 생각했더라면 결과가 이토록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고 후 구조를 위해 현장에 달려갔던 한 어부의 외신 인터뷰가 귓전을 때린다. "구명조끼를 입고 객실에 갇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던 아이들의 표정을 평생 지우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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