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직 없어도…현장 부동층 표심이 당락 갈랐다

4·29 경선 결과 분석…관행 깨뜨린 대구 민심 변화

29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권영진 후보가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29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권영진 후보가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29일 치러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에서 권영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2명의 현역 국회의원을 제치는 '무명의 반란'이라는 결과를 낳자, 지역 정가는 '신선한 충격'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 이번 충격적인 결과는 ▷투표율이 낮으면 조직표가 우세하다는 등식을 깨뜨린 대구 민심의 변화 ▷현장 부동층의 쏠림 현상 ▷국회의원 '오더'가 작동하지 않은 자유투표 등에서 기인했다는 평이다.

◆투표율 방정식이 깨졌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 직전까지 투표율이 낮을 경우 '조직표'가 당락의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는 전망을 많이 내놨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당심이 크게 작용해 조직을 가지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한 정치권 인사는 "투표율이 낮으면 조직력이 힘을 발휘하고, 투표율이 높으면 바람이 통한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했다.

그래서 29일 치러졌던 경선에서도 투표율이 38.1%에 그치자 당협을 가지고 있는 서상기'조원진 두 국회의원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반면 조직에서 취약한 권영진'이재만 예비후보는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정반대였다. 조직이 전무하다시피한 권 후보가 막강한 조직을 가진 두 현역 국회의원을 가뿐하게 제치고 1위에 오르는 이변을 불러일으켰다. 이 후보도 2위를 차지했다. 정설로 믿어왔던 기본 공식이 완전히 깨진 셈이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지역 정치권은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대구의 민심과 당심에서 찾고 있다.

한 정치인은 "대구시민과 새누리당 당원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 기존 정치권 특히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식상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현장 부동층의 쏠림

경선 투표에 앞서 4명의 경선 후보들은 정견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10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정치 철학과 대구시정의 미래 비전 등을 쏟아내는 데 후보들은 최선을 다했다. 국민경선참여선거인단은 이들 4명의 정견 발표 내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를 지켜본 지역 정치인들은 권 후보의 정견 발표가 일정 부분 힘을 발휘했다는 평이다.

지역 한 정치인사는 "이날 정견 발표는 권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면서 "결국 투표장을 찾은 대의원'당원'시민들이 국회의원의 '오더' 없이 자유투표를 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표를 던진 사례가 꽤 많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화를 바라면서도 표심을 감춘 대의원과 당원들이 현장에서 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 애초 오후 1시부터 시작할 계획에서 오전 11시로 투표 시간을 당긴 것이 권 후보에게 도움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점심 시간을 활용해 투표장을 찾는 열성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조직이 없는 탓에 한 표가 소중하다는 인식이 지지자들에게 퍼지면서 궂은 날씨에도 악착같이 투표장을 찾았고, 반대로 현역 국회의원은 조직이 있었지만 열정이 못 미쳐 현장에 오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더'가 막혔다

이번 경선에서 국회의원들이 특정 후보 지지를 우회적으로 밝히는 이른바 '오더'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경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오더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중진을 비롯해 상당수 의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오더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현장에서 오더를 내린 의원들의 실명이 거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심지어 오더를 받은 유권자들이 오더와 다른 선택을 하는 '역풍'도 빚어졌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대구 한 국회의원의 경우 오더를 내렸지만 대의원들이 반발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처럼 오더가 먹히지 않은 것은 민심과 당심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월호 침몰 등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오더가 국회의원의 기득권 유지로 비쳤고, 오히려 반발심만 자극했다는 것이다. 또 대구의 침체 원인을 기존 정치권의 무능으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민심이 오더를 거부하는 현상을 빚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국회의원들이 민심과 동떨어진 오더를 내리던 기존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다.

심지어 민심에 역행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다음 총선에서 민심을 등한시하고 기득권 유지에 관심이 더 많은 국회의원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이창환 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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