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후아이 펑 마이 마을에서
"여종 쏭찬."(안녕하세요. 새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중국에서 내려와 그들 스스로 '몽 차이나'라고 부르며 나이 든 사람은 중국어를 더듬거리는 사람들. 더러는 미얀마와 티베트에서의 압제와 가난을 피해 넘어왔다고 하기도 하는 사람들. 베트남, 태국, 미얀마, 중국, 특히 라오스에 많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 거친 오지 산속으로 딱정벌레들처럼 기어들어가 보기에도 숨 가쁜 까끌막 산들을 화전하여 농토를 만들고 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중국계라 그런지 타이 북부 오지 산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깔리양 부족의 마을에 빙 둘러싸여 단 한 마을이 살면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게 산다. 그들의 새해는 이미 연말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조국이 되어버린 타이의 새해는 태국력으로 '송크란'이 시작되는 4월 13일이다.
◆한 해를 보내는 몽족 마을 풍경
연말이 다가오면 스물다섯째 날쯤부터 이미 그들의 새해는 시작된 듯하다. 매일 이 집 저 집에서 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실컷 먹이며 연말 내내 마을이 잔치 분위기에 휩싸인다. 돼지가 부족하면 옆 마을에 가 사오기도 한다. 그 조그만 산간마을에서 돼지를 잡는 집이 스무 집이 넘는다. 그 집들을 다 돌려고 단단히 맘을 먹고 나서도 반도 돌지 못해 중간에 술에 취해 어느 집에선가 발이 묶이기 일쑤이다. 이방인에게도 친근해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토닥거린다.
◆집 안을 들어가보니
사방을 빙 둘러 나무나 양철로 막아놓았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법 넓다. 사철 무더운 나라이다 보니 위쪽은 막지 않고 그대로 두니 판자의 높이가 도레미파 제각각이다. 부엌은 1960, 70년대 우리나라를 연상시킨다. 땅바닥 위에 역시 문도 없이 한 칸 대충 막거나, 한쪽 귀퉁이에서 장작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한다. 또 집 한쪽 어른 키 높이 정도로 두어 칸 막거나 시커멓게 때에 전 모기장이 쳐 있으면 거기가 방이다. 막 결혼한 새신부도 그렇게 한 칸 차지하고 살거나 바깥쪽에 움막처럼 하나를 더 지어 새살림을 시작한다.
방 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수선하다. 바닥에는 수많은 옷과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며 밤이면 그 시커먼 모기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침이면 나오는데 아이들도 많이 낳고 쑥쑥 잘 자라는 걸 보면 신기하다. 한집 안에서 천장도 없는 방에 부모들과 같이 붙어사는 아들이 어떻게 자식들 낳고 살아가는지.
◆살아있는 화석, 조혼과 일부다처제
몽족은 키가 작고 전체적으로 온몸이 동글동글하며 엉덩이가 툭 튀어나온 체형이다. 특히 여성의 체형에서는 그런 인상을 많이 받는다. 소녀들은 13세가 넘어가면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16, 17세의 소녀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소녀들은 망태를 메고 낫을 들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침부터 들판으로 나가고, 한밤 어느 산기슭에서 소년을 만나 서투른 연애를 할 것이다. 남자 아이들도 15세 정도가 되면 동네잔치에 끼어 어른들이 따라주는 60도의 독한 몽족 위스키도 스스럼없이 마시며 담배도 같이 피우기 시작한다. 부인이 두 사람인 경우도 흔하다. 26세의 유난히 키가 작고 성을 좋아하는 '허'라는 사내는 17, 24, 25세에 세 번 결혼을 했다. 이 마을에는 서너 명까지 부인을 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행사 속으로
몽족의 행사 때는 집 안 땅바닥에 포장이나 자리를 깔고 밥과 돼지고깃국 한 가지를 놓고 술잔이 두 개씩 양쪽으로 돈다. 마치 '우리는 하나'라는 단합의 의미도 있는 듯하다. 술잔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전통과 닮은 것 같기도 하여 정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두 잔은 왼쪽 잔부터 마시고, 반대 방향으로 도는 두 잔은 오른쪽 먼저 마신다. 16, 17세 소년들이 주전자에 술을 담아 따르는데, 첫 잔은 받은 사람이 마시고 양이 많으면 두 번째 잔은 옆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 술을 따르던 소년들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시는데 이 나이쯤 되면 한창 연애를 시작할 때라고 사람들이 웃는다. 잠시 후에는 버펄로잔이라고 하는 큰 잔과 우와소라고 하는 작은 잔 두 잔이 돈다. 큰 잔부터 마셔야 하며 역시 작은 잔은 옆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 다 마시고 나면 반드시 다음 사람에게 술잔을 기울여 잔이 비어 있음을 알리고 난 다음 권한다. 새로 사람이 오면 서로 반가워 부르며 옆에 앉히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올 때쯤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동네 사람들에게 큰절을 올린다. 사람들은 각자 나누어 받은 하얀 실을 새끼 꼬듯 꼬아 이 집 큰아들 손목에 묶어주고 축원을 한다. 어떤 이는 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그들은 차를 새로 사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역시 돼지를 잡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먼저 마을 대표자 두 사람이 하얀 실타래를 양손에 쥐고 마치 기를 넣듯 입김을 불어넣으며 축원을 하고 옆으로 돌린다. 다음 사람들도 그렇게 해서 한 바퀴 돌아오면 처음 시작했던 두 사람이 그것을 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한 사람이 무사고 축원을 하며 야자수 잎사귀 같은 것으로 차를 쓸듯이 한 바퀴를 돈다. 다음 사람은 실 뭉치를 들고 역시 축원을 하며 실을 핸들에 묶어준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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