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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

'세월호'의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국상 중이다. 연일 추모의 물결이 이어진다.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속울음을 삭힌다.

'단원고'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화가들은 김홍도를 떠올린다.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호가 '단원'(檀園)이어서다. 경기도 안산에서는 매년 '단원미술제'를 개최하며, 단원을 기리는 행사를 갖는다. 사실 김홍도가 안산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단지 일고여덟 살 때부터 안산에 거주하던 스승 강세황(姜世晃'1713~91)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한국적인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강세황은 시'서'화 삼절을 두루 갖추었으며, 평론가로도 유명하다. 젊을 때 형편이 어려워지자 서른두 살에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림의 신동인 김홍도를 만나게 되었다.

김홍도는 당대를 풍미한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스승의 문인화풍과 고매한 문기(文氣)를 터득했다. 강세황은 단원을 두고 '무소불능의 신필' '근대의 명수'라며, 인물화, 신선화, 화조화, 산수화, 풍속화 등 모든 장르에 능한 보기 드문 화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원이 어린 나이에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으로 들어간 것도 스승의 추천으로 가능했다.

김홍도는 다양한 화제의 그림이 남아 있지만 풍속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풍속화는 서민의 시선으로 서민의 정서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절묘한 구도와 간결한 필선으로 '서당', '무동', '씨름', '우물가' 등 서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듯이 그렸다.

그중에서도 '씨름'은 경기의 역동성을 보여주기 위해 원형구도가 아닌 마름모 구도를 사용했다. 이를테면 카메라의 포커스를 살짝 기울여 씨름선수에게 시선을 맞춘 특이한 구도라 하겠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씨름꾼의 승부에 쏠려 있지만 그림 속의 '엿 파는 소년'만은 구경꾼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런 어긋나는 시선 처리가 화면의 숨통을 틔워준다. 탁월한 연출력이 아닐 수 없다.

안산은 김홍도가 뛰어난 스승을 만나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연마한 곳이다. '단원고'도 단원의 업적과 재능을 기리는 의미에서 김홍도의 호를 교명(校名)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참사로 미래의 단원인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스승이 제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그 살신성인의 자세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스승 강세황이 제자 김홍도의 재능을 아껴 가르침에 정성을 다했듯이, 최선을 다한 단원고의 스승도 이제 제자들의 가슴에 영원한 별이 되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군사부일체'라고 했겠는가. 노란 리본 물결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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