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대참사로 온 나라가 크나큰 슬픔에 잠겨 있다. 꽃다운 나이의 많은 학생들이 속절없이 희생된 데 대한 안타까움과 우리가 결국 이것밖에 안 되었나 하는 자괴감 때문에 더 그러하다. 특히 사고 이후의 대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의 모습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동안 이루어놓은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이런 가운데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한 명의 제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쓴 선생님들과 본분에 충실했던 서비스직 승무원들이 보여준 살신성인의 모습이었다.
이번 사고도 결국은 어른들의 잘못이 빚은 참사이다. 특히 윗자리에 있는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사태를 더욱 그르쳤다. 무엇보다 선장부터 해난사고의 일반적인 수습 원칙과 완벽하게 배치되는 행태를 보였다. 사고가 났을 경우 승객 구조가 최우선임에도 실제는 정반대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실종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반대로 학생들은 선실에 있으라는 '어른'의 말을 믿고 충실히 따르다 크나큰 변을 당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말과 반대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어른들이 틈만 나면 혀를 차는 아이들의 문제들, 이를테면 학교폭력과 인성파괴 등도 어른들의 언행에서 배운 것이 틀림없다. 오죽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겠는가?
아이들의 마음자리는 본래 어른들보다 선하다. 이번 사고에서 어린 학생들은 경황 중에도 SNS로 선생님의 안부를 묻고 구명복을 친구에게 양보하며 서로 격려하였다. 승객의 안위를 내팽개친 몰염치한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어른들은 아이들 잘못부터 지적하고 나선다. 그리고는 가정, 학교, 사회를 불문하고 설교부터 시작하고 심한 경우 폭언과 체벌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아이들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먼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행동을 보고 배우게 마련이다. 어른들 행동이 그른데 아이들이 바로 자랄 수는 없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맑을 수 없는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의 이치이다.
그러면 아랫사람에게 먼저 모범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멀고 추상적인 것보다 가깝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아이에게 효도 받고 싶으면 먼저 어른들부터 자신의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여쭈어야 한다. 어른들이 형제간에 부모 모시기 경쟁을 하는데 아이들이 커서 부모를 외면할 리 없다. 선생은 하기 싫은 것일수록 학생을 시키지 말고 솔선해야 한다. 근래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의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의 경우 이야기할머니가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보다 더 반가운 양 치마폭으로 달려든다. 할머니들이 먼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다가가기 때문이다. 예닐곱 살 아이도 이렇다.
선진국은 소득만 오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사회를 이끄는 각 분야 리더들의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 침몰 사례를 세월호 사고와 비교하여 언론이 앞다투어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배가 좌초되자 버큰헤이드호 선장은 여자와 아이들부터 부족한 구명정에 태워 탈출시키고 자신은 400여 명이 넘는 병사들과 함께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여자와 아이부터'를 재난구조의 불문율로 만든 이른바 '버큰헤이드호 전통'의 유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며칠 전 스페인에서 항해 중인 대형여객선에 불이 나자 선장은 선원들과 함께 승객 안전 위주로 침착하게 대응하여 한 명의 사상자도 없게 하였다. 우리와 너무 대조가 된다.
세월호 사건으로 그동안 이룬 국가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상실감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그 길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어른들이 어른답게, 윗사람들이 윗사람답게 바로 서서 먼저 실천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이 안전하고 품격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더디지만 가장 확실한 길이다.
김병일/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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