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응원해주세요∼" 씩씩한 다문화 아이들…김예미 양·손지우 군

김예미(9) 양과 어머니 위영추(41) 씨 모녀가 같이 공부하면서 받은 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김예미(9) 양과 어머니 위영추(41) 씨 모녀가 같이 공부하면서 받은 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손지우(14) 군이 레슬링 매트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손지우(14) 군이 레슬링 매트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육군 부사관에 지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다문화가정 자녀들도 여느 아이들처럼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면서 자라고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자신만의 꿈을 키우며 자라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만났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외국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우리 어른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편견의 찌꺼기들을 치우고 이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응원하는 일만 남았다.

◆이중언어 재능 보이는 김예미 양

"오늘 배운 거요? 자갈이랑, 물이랑, 공기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배웠고요, 얼마나 단단한지 손으로 만져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그랬어요."

김예미(9'포항 청림초교 3학년) 양은 기자에게 오늘 학교에서 어떤 걸 배웠는지 술술 이야기했다. 말하는 모습에서 벌써 똘똘하고 똑 소리 나는 예미의 성격이 느껴졌다. 예미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봤다.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다양한 모습도 우리나라에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외교관을 꿈꾸는 예미는 중국어도 참 잘한다. 기자에게 중국어로 단어 몇 개를 알려줄 때 발음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미의 중국어 실력이 이처럼 수준급인 이유는 중국 한족 출신인 어머니 위영추(41) 씨의 가르침과 도움이 컸다. 위 씨는 예미와 대화할 때 대부분 중국어로 대화했다. 위 씨의 한국어 실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예미는 "어릴 때 중국에 4, 5년 정도 살았었고 그때 중국인들의 대화를 따라하면서 중국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위 씨도 "예미의 중국어 실력을 키워주기 위해 평소 중국어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래서 예미는 지난해 전국 다문화 학생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예미는 중국어뿐만 아니라 웅변대회, 시 낭송 대회, 동화 구연 대회 등 무대에 올라서 말하는 대회에 나가면 곧잘 상을 타오곤 한다. 어머니 위 씨는 일찌감치 예미의 재능이 '말하기'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위 씨가 한국에 처음 시집올 때 한국어를 배우면서 같이 배운 동화구연을 예미가 곧잘 따라하는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차렸다. 위 씨는 "예미와 같이 등'하교할 때 길가 벽화에 새겨져 있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한 연씩 따라 외우면서 나의 한국어 실력과 함께 예미의 시 낭송 실력도 같이 키울 수 있었다"며 "한국어를 배우면서 노력했던 모습들을 예미가 그대로 따라하면서 언어능력이 같이 자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출중한 중국어 실력과 시 낭송 실력 등으로 예미는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스타'가 됐다. 게다가 가끔 포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시 낭송 공연 초청을 받기도 한다. 요즘은 영어나 일본어 같은 다른 언어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예미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의 자원봉사 교사들로부터 영어와 일본어를 배우기도 한다.

어머니 위 씨는 예미가 다문화가정의 아이지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위 씨는 "예미가 '네 어머니가 외국 사람이라서…'라는 말을 안 듣게 하려고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는 등 예미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런 어머니의 바람을 잘 아는지 예미는 자신이 외교관이 되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지를 기자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외교관이 되려면 일단 외국어를 잘해야 하고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잘해야 한대요.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엄마가 말씀해 주셨어요."

◆레슬링으로 성공하고픈 손지우 군

28일 대구 수성구 수성중학교 레슬링 연습장에서 만난 손지우(14'대구 수성중 2) 군은 레슬링처럼 격투기 운동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만큼 크고 순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그 순하고 선한 눈매 속 어디에 힘겨운 운동을 견뎌내는 독기를 숨겨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성중 레슬링 감독인 이진희 교사는 "지우는 레슬링을 시작한 지 석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기초체력과 운동에 대한 기량 자체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며 "꾸준히 지금처럼 실력을 키운다면 2학기쯤에는 매우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우의 어머니는 스리랑카에서 왔다. 하지만 지금은 지우와 같이 살고 있지 않다. 지우가 레슬링을 배우면서 숙소생활이 시작돼 본가와 떨어져 사는 데다 어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면서 잠시 스리랑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우는 "한 달 전에 스리랑카에 계신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많이 보고 싶다' '한국에 빨리 가겠다'고 말씀하셨다"며 "빨리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해서 돌아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우가 레슬링을 선택하게 된 데는 많은 사연이 있다. 지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부에 들어갔었다. 그때만 해도 지우의 꿈은 대한민국 최고의 리베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키가 자라지 않아 고민이 시작됐다. 중학생이 돼서도 키가 더 자라지 않아 병원에 검사를 받아본 결과 성장판이 점점 닫히고 있어 키가 더 자라기 어려울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결국 지우는 배구를 포기해야 했고 지우의 운동실력을 잘 아는 배구부 감독이 지우에게 "레슬링으로 종목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이 지우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지우는 "배구를 그만둘 때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운동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우는 오는 24일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0㎏ 체급 대구시 대표로 출전한다. 이 때문에 지우는 쉴 새 없는 연습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 배구에서 레슬링으로 종목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우는 "배구에서 쓰던 근육과 자세가 레슬링과는 달라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적응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진희 교사는 "훈련에서나 생활에서나 지우는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을 늘 보여왔다"며 "비록 또래 친구들보다 운동을 늦게 시작했지만 재능과 성실함이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우의 꿈은 레슬링 선수로서 올림픽 메달도 따고 이후에도 체육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주말에 집에 가면 아버지께서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운동해라'고 걱정스레 말씀하실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려요. 지금은 이런저런 훈련과 연습 때문에 조금 힘들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서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어머니도 빨리 나으셔서 제가 경기에 나가 이기는 모습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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