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정치에 현실주의가 없다면 도덕적인 것마저 타락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마키아벨리(1469~1527)는 자신의 책 '군주론'만큼이나 논쟁적인 인물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그의 독창성이다. 그 이전까지 서구 사회의 기독교 중심 정치관과 그 저변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 윤리가 아닌 것에 기초를 두고, 인간의 실제 행위에 부합하는 윤리와 현실 정치에서 효능을 가질 수 있는 윤리를 찾으려 애썼다. 신의 눈으로 본 것으로 전해질 뿐인 천동설을 부정하고, 실제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성립하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1564~1642)와 닮았다. 군주론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이상적 도덕과 구분되는 현실 정치의 원리를 발견한다.

두 번째는 숨은 의도다. 루소(1712~1778)는 자신의 책 '사회계약론'에서 "군주론 곳곳에 마키아벨리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숨겨 놓았다"고 설명한다. 이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만 군주론을 '공화주의자의 책'으로, 또 '왕이 아닌 민중을 위해 쓴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가 살았던 시대보다 민중의 안위를 더욱 중요시하는 시대가 됐다. 군주론도 더욱 중요한 책이 됐다.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담고 있다. 하나는 군주론을 가능한 한 원문 안에서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전달하는 것이다. '군주론의 새로운 한국어판'을 표방하며 군주론을 번역했다. 원문을 소개하고, '더 깊이 읽기'라는 챕터로 친절하게 해석해준다.

또 하나는 정치철학적 맥락에 따른 군주론 해석이다. 이를 통해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도 바라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한국 정치의 특징은 현실주의가 약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한국의 역사와 정치는 이상적인 이데올로기 담론에 매몰돼왔다. 조선시대의 유교와 현대의 반공주의가 그랬다. 이러한 지배적 이념들은 사회적 가치를 다원화하거나 확대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지적 몽매주의(의도적으로 애매한 말을 쓰거나 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을 방해하는 태도)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정치 담론이 이상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는 실제로는 권력론적이고, 수사적인 담론일 뿐"이라며 "현실주의가 약해질 때 도덕적인 것도 타락한다. 우리는 겉으로는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일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347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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