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찰 답사기 '스님, 계십니까' 전국 25곳 독특한 소재로 풀어

요정 대원각 자리 길상사·법당에 성적묘사 조각…

'스님, 계십니까'(지식노마드 펴냄)는 전국의 사찰 및 암자 25곳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런데 책 첫 장부터 사랑 이야기다. 그렇다고 먼 역사나 설화 속 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북으로 간 시인 백석을 평생 기다린 기생, '자야'(백석이 지어준 애칭) 김영한은 요정 대원각의 주인이 된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1995년 당시 1천억원을 호가하던 대원각을 시주한다. 대원각 자리에 들어선 사찰이 바로 서울 길상사다. 한 남자를 지독히 사랑했던 자야의 욕망은 장엄한 범종 소리의 깨달음으로 바뀌어 울려 퍼진다.

경산 하양의 환성사는 부부의 사랑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상징물이 있는 사찰이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에는 낯 뜨거울 정도로 대담한 성적 묘사(?)가 조각돼 있다. 부처는 이미 2천600년 전 부부지간의 사랑을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 강조했다. 환성사는 그저 부처의 가르침을 마음껏 펼쳐보인 사찰인 셈이다.

이 밖에도 책은 사찰 및 암자 25곳을 뻔한 역사 기행이나 고루한 유적 답사 형식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1장 '그래도 사랑뿐이다'에 이은 2장 '완벽한 고독을 누리다' 3장 '산중에서 길을 묻다'에서 소개하는 사찰 및 암자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나를 돌아보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름난 문화재가 없더라도, 흔적만 남은 옛 절터라도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책의 소재로 포함됐다.

영주 출신인 저자 권중서 씨는 불교 미술 강사, 법무부 교정위원, 조계종 전문포교사, 한국문화해설전문가, 작가, 방송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이 책을 펴냈다. 앞서 '불교 미술의 해학' '사찰의 문과 다리' '한국 용의 원형과 변용' 등 불교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담은 책들을 펴냈다. '스님, 계십니까'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시각만큼이나 독특한 요소가 바로 일러스트다. 책은 사진은 배제하고 일러스트만 담았다. 사진은 정확하지만 차갑다. 반면 일러스트는 따뜻한 느낌을 주고, 보는 이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김시훈 씨가 100장이 넘는 작품으로 사찰 및 암자 25곳의 모습을 담아냈다. 344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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