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비로 온 국민의 아픈 마음을 위로합니다.'
오늘은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온 세상에 가득해야 할 5월 초파일을 앞두고, 여객선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비통함에 빠져 있다. 지역 불교계는 "부처님의 자비가 온 국민의 찢긴 마음을 어루만져주길 기원한다"고 합장했다.
"대구에는 동화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9교구 내에 146개의 말사가 있습니다."
대구의 대표 사찰 동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다. 대구와 대구 인근 지역 불자들에겐 상징적인 곳이다. 하지만 제9교구에는 동화사 외에 146개의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모든 크고 작은 절들이 바로 동화사로 대표되는 제9교구 사찰들이다.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와 그 말사들은 대부분 팔공산, 비슬산, 앞산 등 대구를 둘러싼 산자락 곳곳에 펼쳐져 있다. 신라-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며 대구경북지역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했고, 우리 역사를 전개하는 주요 현장도 됐다. 지금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수행의 장으로, 지친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제9교구 산하 사찰은 불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로 붐빌 것이다. 동화사로 대표되는 제9교구 주요 사찰 7곳을 소개한다.
▶교구 본사 '동화사'(493년'신라 소지왕)
동화사(대구 동구 도학동)는 조계종 제9교구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창건 당시 이름은 유가사였다. 이후 832년 신라 흥덕왕 때 겨울철에도 사찰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했다며 동화사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역사적으로 동화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영남승군 사령부를 설치해 왜군과 맞서 싸운 곳으로 유명하다.
동화사는 문화재 보물 창고다. 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상(보물 제244호), 비로암 3층석탑(보물 제247호), 금당암 3층석탑(보물 제248호), 당간지주(보물 제254호) 등이다. 또 대웅전, 극락전, 부도군, 수마제전, 사명당대장진영 등 여러 지방 및 지방민속 문화재가 사찰 경내 곳곳에 있다. 또 1992년에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세운 33m 높이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이 우뚝 서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도 그러모으고 있는 국내 유일의 선(禪) 체험관, 현재 국내 최대 규모로 제작하고 있는 법화경 석각 미술품 '일심관불' 등 미래에 남겨줄 불교문화 인프라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소나무숲 속에 자리한 '송림사'(544년'신라 진흥왕)
'소나무 숲(송림'松林)에서 절이 솟아났다'는 전설을 가진 송림사(칠곡군 동명면 구덕리)는 이름 그대로 사찰 주위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매력적이다. 송림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경내에 우뚝 솟은 5층 전탑(보물 제189호)이다. 안동의 신세동 7층 전탑'동부동 5층 전탑'조탑동 5층 전탑, 경기 여주 신륵사 다층 전탑과 함께 국내에선 희귀한 전탑이다.
탑 안에서도 보물도 나왔다. 1959년 해체 수리를 할 때, 탑 안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보물 제325호로 지정돼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송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중국 유학승 명관 대사가 신라에 오면서 이운해 온 불경 2천700권과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고, 그 일부가 전탑 안에 봉안된 것이다.
▶초조 고려대장경으로 유명한 '부인사'(창건연대 미상)
최근 원조 고려대장경인 '초조 고려대장경'으로 명성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부인사(대구 동구 신무동). 고려 때 이곳에 도감을 설치해 호국의 염원을 담아 초조대장경을 판각했다. 하지만 1232년 몽골의 침략으로 초조대장경 대부분이 소실됐고, 이를 두 번째로 새긴 재조대장경이 현재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부인사의 본사인 동화사는 올해 완료를 목표로 2011년부터 초조대장경 인경본(인쇄본) 원형 그대로 2천40권을 복원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부인사는 앞서 신라 때 선덕여왕과도 인연이 깊다. 신라시대에 왕비를 '부인'이라고 불렀으며, 그 주인공이 선덕여왕이라는 설(說)이 있다. 선덕여왕 때 창건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사찰 경내에는 선덕여왕의 초상을 모시는 숭모전이 있다. 그래서 100여 년 전부터 부인사와 인근 주민들은 선덕여왕을 기리는 선덕제를 지내왔고, 28년 전부터는 매년 대규모로 숭모재를 열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사랑을 받은 '파계사'(804년'신라 애장왕)
파계사(대구 동구 중대동)는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왕실로부터 사랑받은 사찰이다. 특히 영조와 인연이 깊다. 숙종 때 파계사의 현응대사가 100일 동안 기도한 끝에 숙빈 최씨가 영조를 잉태했다는 말들이 전해온다. 이후 영조는 왕세자 시절부터 여러 차례 령(令)을 내려 파계사에 관할 관아와 주변 유생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파계사에는 영조가 남긴 흔적도 많다. 영조가 11세 때 '현웅전'이라고 써서 내린 현판이 성전암 법당에 걸려 있고, 영조가 입었던 도포(중요민속자료 제220호)와 '영조 임금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느티나무가 있다. 영조 이후에도 정조가 '천향각'이라고 쓴 편액을 하사하고, 순조가 왕실 재정으로 미타암을 세웠으며, 철종 때 백화루를, 고종 때 기여각을 수리해주는 등 조선 왕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파계사는 지역의 템플스테이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힐링 휴식형'여름 별맞이 체험형'가을 달빛맞이'해넘이와 해맞이'선 수행형 등 시기와 취향을 고려한 다양한 템플스테이를 개발해 인기를 얻고 있다.
▶대구 앞산에 위치한 '임휴사'(921년'신라 경명왕)
앞산에 있는 임휴사(대구 달서구 상인동)는 고려 태조 왕건과 인연을 맺은 사찰이다. '임시로 쉬어 간다'(임휴'臨休)는 이름부터 왕건이 전쟁 중 지친 심신을 달래고 간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한창 후백제의 견훤과 접전을 벌이다 수세에 몰린 왕건은 앞산에 이르러 은적사, 안일사 그리고 임휴사에 머무르다 전세를 뒤집고 '고려'를 세운다.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배했다는 '파군재', 새벽달이 왕건의 탈출을 도왔다는 '반야월'과 함께 대구에 남은 왕건 지명 및 유적 중 하나가 바로 임휴사다.
임휴사는 관세음보살에게 올리는 기도가 효험이 있다고 해, 관음기도처로도 유명하다. 왕건도 군사를 잃고 쫓기는 신세에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휴사는 2004년 한 괴한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되기도 했다. 이후 장기간 복원공사를 거쳐 2008년 완공됐다.
▶비슬산의 명 사찰, '용연사'(914년'신라 신덕왕)와 '대견사'(9세기'신라 헌덕왕)
불교계에서는 대구 북쪽 팔공산을 산세가 웅장해 아버지 산으로, 남쪽 비슬산을 온화하고 부드러워 어머니 산으로 여긴다. 동화사를 필두로 수많은 사찰을 품은 팔공산만큼이나 비슬산도 불교와 인연이 깊다. '비슬'은 고대 인도의 신 '비슈누'를 한자로 음역한 '비슬노'에서 온 단어다. 비슬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적멸보궁(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 2곳을 보유한 산이다. 용연사(대구 달성군 옥포면)와 일제시대에 폐사됐다 최근 복원된 대견사(대구 달성군 유가면)가 그곳이다. 용연사에 있는 석조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 금산사 방등계단과 함께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계단형 사리탑이다.
대견사는 국내 기도 도량 중에서는 오래전부터 '북(北) 봉정, 남(南) 대견'(북쪽 설악산 봉정암과 남쪽 비슬산 대견사)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사돼 터만 남아있던 이곳은 3월 중창 불사를 마치고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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