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미안한 어른들

세월호 참사에 어버이날, 스승의 날 행사 차분…카네이션도 덜 팔려

"아이들아!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너무 부끄럽구나."

세월호 침몰 참사 여파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마저 숙연하게 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을 차가운 바닷속으로 밀어 넣은 그릇된 어른들의 행동에 자식을 둔 부모들은 나 혼자 어버이 대접을 받을 수 없다며 가슴에 달 카네이션을 손사래 치고 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만큼 올해는 애도와 슬픔을 나누는 경건한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보내겠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카네이션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전국에 유통되는 카네이션의 65% 정도를 생산하는 김해카네이션재배연구회 김진욱 회장은 "올 5월은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 탓에 어버이날, 스승의 날 행사가 거의 취소됐고, 카네이션 주문량이 지난해보다 15% 줄었다"고 전했다.

대한노인회 대구시연합회와 대부분의 노인종합복지관, 요양병원 등이 매년 어버이날 열던 전시회, 게이트볼 대회, 공연 등을 취소했다. 또 온라인을 통해 희생자, 실종자 부모를 위해 회원들이 직접 카네이션과 노란 리본을 그린 그림을 공유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실종자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SNS 프로필 사진을 노랗게 물들였던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의 연장선이다.

이순경(39) 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어린 아이가 건네주는 카네이션을 자랑스럽게 달기엔 마음이 아프다. 동네 주민 30여 명이 모여 플래카드, 차량 추모 스티커, 노란 리본 등을 만들었다. 이번 사태는 일부 어른들의 그릇된 행동과 또 그것을 묵인하고 동조한 우리 사회가 빚어낸 참사였다.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잊지 말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어버이날 기념 공연을 취소한 대구 달서구 송현동의 한 요양병원 원장은 "인지장애가 있고, 판단력이 부족한 어르신들도 이번 일에 많이 놀랐다. 마치 손자 손녀를 잃은 듯 슬퍼했고, 자식뻘인 희생자 부모들의 앞날도 걱정했다.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카네이션 달아 드리기 행사만 할 예정인데 어르신들은 이 또한 죄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스승의 날을 맞는 학교들도 올해만큼은 희생자들을 향한 애도로 채울 준비를 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스승의 날 행사를 내부적으로 조용히 치를 것을 각급 학교에 전달했다. 경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성영(51) 씨는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 어린 학생들과 그들을 이끈 교사도 참사의 희생양이 돼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 이번 스승의 날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구청들도 이달 중순까지는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노란 리본을 달기로 해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박승길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으로 퍼진 애도 분위기는 우리 국민이 타인과 감정적으로 교감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고방식이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남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면 이러한 분위기가 이성적, 합리적인 공감대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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