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족 위해 희생? 그래서 더 행복"…보화상 최고상 임성자 씨

아픈 시모 지극 정성 병수발, 장애 시숙 딸 친딸처럼 키워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올해 보화상 수상자 임성자(가운데 곱슬머리) 씨. 4일 오후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 임 씨의 집에서는 임 씨와 시어머니, 시숙, 딸 내외와 아들, 손자 등이 집 마루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전종훈 기자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올해 보화상 수상자 임성자(가운데 곱슬머리) 씨. 4일 오후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 임 씨의 집에서는 임 씨와 시어머니, 시숙, 딸 내외와 아들, 손자 등이 집 마루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전종훈 기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어머니가 더 건강히 오래 함께 계셨으면 하는 게 내 바람입니다."

최근 대구시 (재)보화원이 주관하는 제57회 보화상 최고상인 본상을 받은 임성자(60) 씨(본지 4월 25일 자 28면 보도)를 4일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 시릿골에서 만났다. 임 씨의 집에는 이날 객지에 있는 3남매와 손자 등이 모두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이 낳은 손자'손녀 4명은 임 씨에게 "할머니~" 하고 안겼고, 임 씨는 네 손주를 안아주려고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임 씨의 3남매가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고향집을 방문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모여 근처 신촌 약수터에 닭백숙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임 씨는 시어머니를 챙기느라 바빴다. 임 씨는 "몇 달 전만 해도 시어머니께서 몸져누우셔서 걱정이 많았다. 이렇게 아프시다가 돌아가시는 것은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다행히 기력을 회복하셔서 이제 집 앞 산책도 다니신다"고 했다.

임 씨는 얼마 전까지 아파서 누워 있던 시어머니 박경한(95) 씨의 대소변을 받으며 간호했다. 자식들이 있는 안동과 대구 등지에서 좋은 약이란 약은 모두 구해 시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보살폈고, 정성이 통했는지 100세를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병환이 극적으로 호전됐다. 박 씨는 "내가 딸이 없는데 하늘에서 착한 며느리를 선물해줬다"며 며느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임 씨는 시집올 때부터 효부였다. 2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나 18살 어린 나이에 시집왔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와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은 시숙(75)을 돌보며 43년간 화목한 가정을 이끌었다. 시숙을 대신해 조상 제사를 모시며 묵묵히 집안의 맏며느리 역할을 자처했다.

결혼할 당시 시숙에게는 헤어진 부인과의 사이에 딸이 있었다. 그 딸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기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임 씨의 호적에는 지금도 자신과 13살 차이 나는 시숙의 딸(48)이 첫째 딸로 올려져 있다. 임 씨는 "질녀는 지금도 나한테 엄마처럼 대하며 잘한다. 명절마다 선물도 챙겨오고 늘 자신의 아버지를 보살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난 가족인데 그런 마음 갖지 말라고 매번 말하는데도 질녀는 자꾸 마음을 쓴다"고 미소 지었다.

임 씨는 지난 2011년 집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서 남편을 경운기 사고로 잃고 몇 달간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후 마을 입구에서 집으로 들어오다 넘어져 오른쪽 팔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 지금도 오른쪽 팔이 제대로 펴지지 않고 통증이 있다.

그럼에도 임 씨는 식구들에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객지에 나간 큰아들을 대신해 손자(13)'손녀(6)까지 돌보며 논 2천600㎡에 혼자 벼농사를 짓는다. 가을이면 이 논에서 쌀 80㎏ 10포대를 수확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 부쳐준다.

임 씨는 "어렵던 시절 식구들에게 매일 따뜻한 밥 한 공기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농사지어 쌀을 보낸다"며 "주위 사람들은 내가 희생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행복한 가정은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가 행복해야 만들 수 있다. 지금 난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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