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홀몸노인 10만 명 훌쩍, 친구 만들어줘요"

노인 비율 전국 두번째 높아…道, 이달부터 본격사업 개시

경주종합복지관 생활관리사들이 경로당을 방문해 노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경북도는 홀몸노인을 위해 친구 만들기, 방문 약손 사업 등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경주종합복지관 생활관리사들이 경로당을 방문해 노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경북도는 홀몸노인을 위해 친구 만들기, 방문 약손 사업 등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어머니 식사는 잘하셨어요, 아픈 데는 없고요. 약은 드셨지요. 어젯밤 잠은 잘 주무셨어요?"

지난달 17일 오전 10시쯤 경주 내남면 한 한옥집. 김조순(가명'83) 할머니 댁을 방문한 김정림(55) 씨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연이어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경주종합사회복지관에 소속된 생활관리사로 노인 돌보미 역할을 한다. 매일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안부를 묻고 도울 일이 있으면 팔을 걷어붙인다.

김 할머니는 김 씨가 찾아오면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어서 온나, 먼 길 오느라 욕봤제(수고했지), 아직은 날이 왔다갔다하제. 안 춥나." 김 할머니는 반가운 듯 방안으로 안내했다.

김정림 생활관리사가 요구르트가 든 봉지를 할머니에게 내밀자 할머니는 익숙한 듯 받아든다. 이내 두 사람은 허물없는 모녀간이 된다.

할머니는 김 씨에게 어제 경로당에서 있었던 일, 동네 할머니와 쑥 캐러 갔던 일, 자식들 자랑까지 한참 수다를 늘어놓는다. 김 씨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며 할머니에게 율동과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가르쳐 준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40여 분을 김 할머니와 보낸 김정림 생활관리사는 이어 다른 노인댁을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김 씨는 내남면 일대 30여 명의 혼자 사는 노인을 이런 방식으로 돌본다.

복지관에는 김 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72명에 이른다. 경주 홀몸노인 1천800여 명을 정기적으로 찾아 돌본다. 생활관리사 1명이 보통 25~30여 명의 노인들을 관리하는 셈이다. 이들은 노인 말벗은 물론, 병원 동행과 은행 업무, 행정서류 대납, 집안일까지 거든다.

이 복지관의 노인돌봄사업은 경북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꼽힌다. 지역 어르신 547명에게 '안전 휴대전화'를 지급, 긴박한 순간에 즉시 도움을 연락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놨다. 이 전화의 단축번호 1번은 119, 단축번호 2번은 생활관리사와 직통으로 연결되도록 해놨다.

시골 홀몸노인들이 급격히 늘면서 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바빠지고 있다. 하지만 홀몸노인들의 증가세를 도움을 주는 이들의 손발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김종우 경주종합사회복지관장은 "홀몸노인들에게 생활관리사는 살과 살, 손과 손이 닿는 마지막 전달자"라며 "경주는 겨우 1천800여 명이 혜택을 받고 있는데 최소 3천 명 이상 수혜자가 되도록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경북도는 5월부터 '홀몸노인 친구 만들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경북도는 경산시재가노인지원센터, 김천시노인종합복지관, 문경시종합사회복지관, 포항시니어클럽 등 4개 기관을 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했다. 노인 친구 만들기 사업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소 1명의 친구를 만들어 고독사 및 자살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시범기관으로 선정된 곳에는 연간 약 6천만원을 지원해 건강 상담, 우울증 및 자살 예방, 요가'요리교실, 건강체조, 밑반찬 나눔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경북도는 지난달 27일 경북도약사회와 협약을 맺고 '홀몸노인 방문 약손 사업'도 개시한다. 경북도 약사회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약사들과 홀몸노인 사이에 일대일 결연을 한 뒤 약사회원들이 매달 한 차례 이상 홀몸노인을 방문해 노인들의 건강멘토가 돼주는 것이다.

경상북도지사 권한대행 주낙영 행정부지사는 "홀몸노인 방문 약손 사업은 전국에서 처음 하는 것"이라며 "시골 홀몸노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실히 세우겠다"고 했다.

한편 경북은 노인 인구 비율이 16.8%로 전국에서 전남(19.6%)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고령화 지역. 경북 노인 인구 45만2천여 명 가운데 26.3%가 홀몸노인이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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