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자사에서 생산된 수출용 스테인리스가 내수용으로 둔갑해 유통됐지만 관련업계 제보가 있기 전까지 사태 파악조차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포스코는 스테인리스 불법 유통을 인정하면서도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 윤리경영 의지를 무색게 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출용을 내수용으로 유통시키면서 시장가격 질서 왜곡을 불러온데다, 특정 업체의 부당 이득을 챙기게 해 준 도의적인 책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내수용이 수출용으로 어떻게 둔갑했을까?
포스코 스테인리스 구매 업체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스테인리스 수출품 가격은 1㎏당 1천500~1천550원 수준으로 내수 판매용(2천100원)보다 600원가량 싸다. 1t만 불법 유통해도 60만원의 차익이 남는 셈이다.
한 제보자는 "포스코에서 직접 스테인리스를 구매하는 업체 담당자들이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액을 노려 스테인리스를 비정상적으로 중소 철강 판매업체에 유통시켜왔다. 수출용이 내수용으로 둔갑해 판매된 사실은 업체별로 이뤄진 매입매출 집계표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제보자는 또 "수출용 스테인리스를 공급받은 업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수용만 취급하는 업체들이다. 이런 사실을 포스코가 전혀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스테인리스 불법 유통 경로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를테면 스테인리스 수출 주문을 100t 받았다면, 50t은 중국에서 구입해 납품하고 나머지 50t은 포스코에서 다시 수출용으로 100t을 구매한 뒤 50t은 정상적으로 수출하고 나머지 50t은 내수용으로 돌린다.
이렇게 하면 수출용 주문량 변동 없이 국내로 철강을 불법 유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업체는 이 같은 방식으로 스테인리스를 불법 유통했고, 밝혀진 것만 2천500t에 이른다.
한 업계 전문가는 "포스코가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수출용을 내수용으로 바꿔 유통시킨 사실을 지금껏 몰랐다는 것은 관리감독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라며 "만약 불법 유통이 장기화됐더라면 가격 경쟁력에 밀린 중소 철강 판매업체들의 줄도산은 물론이고 철강시장에서의 유통질서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했다.
◆포스코는 잘못이 없다?
본지가 스테인리스 불법 유통이 있었는지를 확인하자 포스코 측은 '맞다'고 인정했다. 포스코는 모 스테인리스 판매업체가 수출품을 내수용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고 있다는 제보를 접한 뒤 감사에 착수했고, 불법 유통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해당 업체에 대해 수출용과 내수용의 가격 차로 발생한 부당이득에 대한 배상금 5억3천만원(1년분)을 부과했고, 포스코 담당자를 보직 이동하는 인사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포스코는 해당 업체가 얼마 동안 불법 유통을 일삼았는지, 다른 업체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또 담당자가 업체의 비정상적인 유통 행위를 몰랐고, 직접 개입 정황도 없기 때문에 포스코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한 스테인리스 업체가 포스코에서 납품받은 수출용 스테인리스를 내수용으로 돌려 판매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포스코 직원과의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단 업체의 단독 소행으로 보고, 부당이득에 대한 손해를 배상받았다"며 "문제가 일단락된 만큼 해당 업체에 대해서도 이달부터 다시 수출물량을 납품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16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철강제품 가공'판매업체인 포스코P&S에 대해 압수수색(본지 4월 16일 자 14면 보도)을 진행, 철강 거래 관련 자료와 회계장부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회사 간부의 비리 혐의를 포착했다"고 전했고, 포스코는 "그룹이 아닌 한 개인의 비리일 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수사가 철강 가공 및 판매를 핵심사업으로 하는 계열사에 집중되는 만큼 이번 비정상적인 철강 유통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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