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 고요하지만 그 아래 생명력이 넘치는 바다의 모습을 표현할 때 이만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단어만큼 절절하게 와 닿는 단어는 없을지도 모른다. 경주 감포 바다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작가 박익진(61) 씨는 이 두 단어를 가슴 깊이 느끼며 사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10년 넘게 준비한 인생 제2막
박 작가가 사진에 입문한 지는 올해로 14년째. 사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본 한 점의 사진 때문이었다.
"2000년쯤이었을 겁니다. 문화예술회관에 갔더니 전시실 입구에 연꽃 사진 하나가 전시돼 있더군요. 곱게 핀 연꽃이 새벽 안개가 덮인 연못과 안개 뒤로 보이는 정자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몽환적이면서도 뭔가 심오한 울림을 주었어요.
그 사진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사진을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연꽃 사진을 보고 사진을 배우기로 한 박 작가는 다음날부터 사진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구시 공무원이었던 박 작가는 '사광회'라는 사진 동우회에 가입해 사진에 대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사광회 회원들과 함께 틈틈이 작품활동을 해 오던 박 작가는 지난해 6월 공직에서 정년퇴직하면서 사진작가로 인생 제2막을 열었다.
◆감포를 프레임에 담다
박 작가는 자타 공인 '감포 전문 사진작가'로 통한다. 수많은 피사체 중 굳이 경주 감포 바다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사진을 배우면서 이런저런 습작사진들을 찍을 때마다 왠지 내가 찍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고향인 감포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선물했어요. 그때부터 갑자기 고향이 감포인 사람들에게서 '그 사진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며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내 사진의 주제를 내 고향 감포로 잡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작가는 지금도 주말이면 카메라를 챙겨들고 감포로 향한다. 주로 변화무쌍한 감포 바다의 모습과 근처 시장 상인과 어민의 삶의 모습이 촬영 소재가 된다. 10년 이상 감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다 보니 박 작가의 사진이 감포의 변화상을 기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감포 주변이 각종 도로 개설로 옛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지금, 박 작가는 사진으로라도 감포의 풍경을 담아 변하기 전의 모습을 계속 전하기 위해 열심히 감포를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에 미쳐야 미치더라
자연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데에는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박 작가는 이러한 인내심의 발로가 '사진에 미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다 사진이 가장 멋있게 나올 때는 겨울입니다. 그래서 겨울에 바다 풍경을 찍으려고 무던히도 감포 바다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끝에 동상을 입어 날씨가 추워지면 손끝이 가려워져요. 그도 그럴 것이 손끝이 얼어서 검게 변할 때까지 사진을 찍었으니까요."
사진을 향한 박 작가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최근에는 그가 몸담고 있는 '사광회'의 장국현 고문, 전창욱 지도교수와 함께 독도의 사계절을 사진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야생화 사진작가로 유명한 황영목 전 대구고등법원장과 함께 야생화 촬영도 같이 다니고 있다. 이런 박 작가의 주말 외도(?)에 가족들은 불만이 없는지 궁금했다.
"사진을 시작할 때쯤 장비 마련을 위해 아내 몰래 1천만원을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 받았어요. 어느 날 아내가 '그렇게 장비 마련하고 돌아다니려면 돈이 꽤 들었을 텐데 어디서 대출받았는지 이실직고하시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손가락 하나와 통장을 내밀었죠. 아내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일 다 메워줄 테니 열심히 하시라'고 하더군요."
박 작가는 "내가 찍고 싶은 바다의 모습을 만나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은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등에서 땀이 난다"고 했다. 그의 말에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하겠다"고 말하던 숀 오코넬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도 사진에 미쳐 있는 그의 걸작을 볼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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