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폿(옥수수) 탈곡의 계절
"사르락사르락." 산등성이마다 마른 옥수숫대가 서걱댄다. 그때마다 순례자의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는데 고개를 넘다 보니 기계 위로 날려가는 옥수수 껍질이 자욱하다. 벌써 한 달 이상 탈곡이 진행 중인 가운데 탈곡 장소에서는 미니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옥수수 알갱이 포대들을 싣고 떠난다. 그 양이 엄청나 며칠째 밤샘 작업이다. 근처 숲이나 농막에서는 포커 도박이 진행되고 있다. 눈치 빠른 깔리양족 아낙은 그 앞에 작은 탁자를 놓고 소시지, 튀김, 찐계란 등을 팔고, 누군가는 한 봉지에 20바트(한화 약 800원) 하는 40도 깔리양족 위스키를 사 와 안주도 없이 권한다. 우리의 깡소주는 그나마 양반인 듯하다.
먹음직스럽게 노랗게 익은 옥수수를 하나 집어들어 먹는데 이가 아플 정도로 딱딱하다. 그나마 하나 다 먹었는데 몽족 사내가 먹지 말라고 한다. 이 산간 오지마을 옥수수도 유전자 조작이 된 것들이란다. 이곳에서도 농약 쓰는 양이 만만치 않고 아무 의식도 없이 버리는 비닐봉지나 세제의 양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심심산골이라도 인간이 들어와 살게 되면 자연에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그래도 어느 집이나 어두침침한 집안에 카우폿과 카오(쌀) 포대들이 배부르게 쌓여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고갯길을 넘다 보니 한 달 이상 지속되던 옥수수 탈곡도 연말을 맞아 잠깐 쉬고 있다. 그 옆으로 옥수수 껍질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30, 40마리는 될 듯한 동네 소들이 모여 잎을 먹다가 낯선 사람이 다가가자 일제히 고개를 들고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깔람삐(양배추) 수확
이들은 또한 깔람삐, 고추, 당근 등을 대규모로 수확해 밤마다 구불구불 오지 산속을 3, 4시간 이상 돌아 도시에 내다 팔고 새벽이면 돌아온다. 3개월이면 수확한다는 깔람삐는 시도 때도 없이 산비탈에 심는다. 집집마다 대부분 소유한 일제 미니 트럭에 차가 휘어지도록 실으면 3t이다. 이것을 도시에서 도매로 넘기면 1만5천바트(약 60만원)를 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기름과 저녁 밥값으로 1천바트쯤 떼야 한다.
과도로 깔람삐 베는 소리가 사각사각 감칠맛 나게 들린다. 산모롱이를 막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기린처럼 고개를 높여 보니 길가 고추밭 울타리 너머에서 깔리양 아낙이 나를 부른다. 밭으로 가보니 망태를 멘 아낙 둘과 아저씨 한 명이 땡볕 아래에서 엄청 매운 자그마한 고추를 따고 있다.
조그만 것들이/ 건방지게/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붉게 충혈되어/ 한껏/ 신기新氣를 뿜어내고 있는/ 땡볕 아래
꽃인 줄 알고 오색 나비도/ 날아와/ 살살 꽁지를 몇번 문질러 보는/ 건너 마을 신리기 댁도/ 가랭이를 쩍 벌린 채/ 세월 속에 허생원이라도 기다리는지/ 단잠에 들어/ 살냄새 솔솔 풍기는/ 한낮/ 그 위로/ 흔들리던 우주가/ 포개진다/-'타이 고추' 윤재훈
◆고산족들을 관리하는 '오바또'
중국이나 미얀마 등 인근 나라에서 넘어온 고산족들을 자국 국민으로 인정하려는 듯 마을마다 작은 분교들이 있어 아이들 소리 요란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땅덩어리에 비해 사람 수가 적은 것도 한 이유인 것 같다. 또한 다양한 고산족들이 그곳을 농토로 만들어 자국민들을 위한 먹거리를 생산해 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쌀을 많이 수출하는 것 등에 일조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 듯하다.
그래서 오지 산간 마을을 몇 개씩 묶어 오바또라는 관공서가 이들을 관리한다. 고산족들은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현지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오직 자신들의 언어로만 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고산족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몇 명 안 되는 정식 직원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산족 젊은이들을 저임금 계약직으로 고용해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60세 이상 고산족 노인들에게는 정기적으로 600~700바트씩을 주고 혈압이나 몸무게 등 간단한 검사도 해준다.
얼마 전부터 오바또를 2층으로 새로 짓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작은 콘크리트 기계 한 대를 비비며 작업을 하고 있어 한 달이 지나도 그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사철 무덥다 보니 가옥은 1층은 비워놓고 2층만 산에 무성한 나무나 대나무를 베어와 대충 막아 산다. 천장 부근은 빙 둘러 바람이 통하도록 비워놓고 나뭇잎으로 지붕을 덮는다. 그나마 여기는 관공서이다 보니, 철근으로 가느다란 기둥을 세우고 지붕 뼈대로 철골을 얹고 그 위에는 슬레이트를 올린다.
◆'후아이 펑 마이 마을' 몽족 사내들
주말 아침 일찍 열한두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자기 키보다 훨씬 큰 공기총을 메고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사냥을 나간다. 여기는 대부분 집에 공기총 한두 자루쯤은 있다. 권총들도 가지고 있고 총을 파는 상인들도 다닌다. 마당에는 17세 엄마가 부푼 젖을 스스럼없이 내놓고 아기에게 먹인다. 청년들은 동네 가게나 살라(정자)에 앉아 두 손을 마주치며 "땁 땁" 하고 성적인 이야기를 즐겨 한다. 15, 16세 소년들의 휴대폰에는 각국의 불법 동영상이 가득한데 형들에게 보여주며 자랑도 한다. 10대 아이들도 콘돔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몽족의 시커먼 장정들은 인근의 깔리양족에 비해 마음이 무척 순수하고 여려 슬픈 일이 있으면 종종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윤재훈(오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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