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베토벤 음악을 들었다. 5번 교향곡 '운명' 3악장은 운명처럼 내 삶에 다가왔다. 그의 음악과 문학관은 내 생활의 길동무였고 지침서였다. 그래서 나도 베토벤이 애독했던 오디세이와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읽었고, 베토벤의 영웅이었던 브루투스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은 푸르트벵글러(1886~1954)의 베토벤 3번 교향곡 '영웅'을 들어보자. 독일 출신의 푸르트벵글러는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토스카니니와 비교해 거론되기도 한다. 그는 악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곡을 해석한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정확하고 엄격한 스타일의 토스카니니와 다른 점이다.
그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취임했던 1922년에는 독일에 머무르며 지휘를 계속했다. 이때 행적은 그가 나치 행적에 협력한 것으로 비쳐 논쟁의 불씨가 됐다. 푸르트벵글러는 토마스만이 독일에 남아 있는 자신을 비판하자 이렇게 스스로를 변호했다. "히틀러의 공포 아래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던 독일인 만큼 베토벤을 듣고 싶어한 민족은 없었다. 독일인은 베토벤의 음악 속에 담긴 사랑과 인류애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했다."
3번 교향곡 '영웅'은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1년 전에 녹음된 음반이다. 1953년 미국의 우라니아(URANIA) 레이블에서 저작권과 상관없이 불법 출반했다. 당시 최상의 연주와 뛰어난 음질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후 푸르트벵글러가 소송을 제기해 발매중지가 됐고, 그 후 '전설적인 명반'으로 남았다. 지금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녹음이 이루어진 우라니아판과 빈 필하모닉(1944년 12월 19, 20일) 음반이 나와 있다.
'영웅'은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했다가 그가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하며 악보를 찢어버린 곡으로 유명하다. 권력자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후 이 곡을 후원자였던 로프코비츠 공작에게 헌정한다. 하지만 베토벤이 공화정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을 찬양했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토록 빠른 악장에서도 서두름이 없는 것은 푸루트벵글러 특유의 집중력 덕분이다.
2악장 장송행진곡은 도도한 흐름을 따라 어둡고 장중한 맛이 느껴진다. 느린 악장에서의 우아함, 격렬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종교적인 분위기다. 푸르트벵글러 자신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 3악장은 일반적으로 미뉴에트를 쓰지만, 이 곡의 3악장은 스케르초가 곡 전체를 지배한다. 뒤이어 자유로운 변주곡의 4악장이 나타난다. 승리를 연상케 하는 악장이다. 한니발이 알프스산맥을 넘어서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군분투하며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승리감, 힘찬 리듬 속에서 스며 나오는 우울한 선율이 이어진다.
권력자가 된 나폴레옹에게 냉정하게 등을 돌린 베토벤. 그리고 베토벤을 좋아했던 푸르트벵글러. 예술가의 부역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시대적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베토벤을 해석한 그의 능력은 정말로 탁월하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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