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반려동물 키우기-로드킬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과 자주 가던 집 근처 오락실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험 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오락실 안에 있던 동전 노래방만 가곤 했었지만 수능을 치고 나서 뭔가 색다른 것을 찾던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자동차 게임이었다. 마치 실제 자동차 운전석인 것처럼 핸들과 변속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때마침 친구가 운전면허 연습 중이기도 했기에 운전 연습도 미리 할 겸 재미 삼아 한번 앉아서 해 보기로 했다. 물론 실제 차 운전과는 굉장히 달랐지만 묘하게 속도감도 느껴지고 스릴도 있어 그 이후에도 친구를 만날 때면 가끔 들러서 한 번씩 하곤 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친구와 했던 그 게임이 종종 생각 난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잘 기억되는 화면은 바로 도로 옆에 있던 동물들이다. 좀 더 실감 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주변엔 젖소들이 있는 초원이 있었고 가끔 그 젖소들은 도로 한복판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자칫 잘못해서 도로를 이탈하거나 도로를 지나가는 소들을 피하지 못하면 부딪쳤고, 그 자리에서 소들은 공중분해되었다. 단순한 게임 화면이었기에 끔찍한 영상인 것도 아니었고, 게임을 진행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없었기에 그 당시엔 잔인하단 생각보다는 그냥 '아 또 운전 잘못했어' 정도였지만 후에 그 상황을 떠올려보니 그건 바로 말 그대로 '로드킬'(road-kill)이었다.

요즘은 자주,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시골길에 저녁 어스름이 자욱하게 깔리면 여러 동물들이 산을 내려오기 때문이다. 늘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를 선두로, 들로 내려와서 노는 고라니와, 너구리, 그리고 족제비 등 낮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야생동물들까지 총출동하는 것이다. 산에서 들로 내려오는 곳엔 대부분 사람이 만들어 놓은 도로가 있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녀석들은 이 '도로'를 지나쳐 들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도 '고라니 나들목'이라고 칭해도 될 만큼 고라니가 자주 지나가는 위치가 있다. 봄으로 접어들면서 길어진 해 덕에 퇴근시간과 동물들 출몰시간이 엇비슷해졌고, 종종 도로 위를 지나가는 길냥이와 고라니, 너구리를 마주치곤 했다. 다행히 속도를 늦추고 지나가다가 동물들이 지나갈 경우엔 살짝 멈추고 기다려주면, 녀석들은 굳은 채 잠시 차 쪽을 빤히 보다가 뒤늦게라도 깜짝 놀라며 옆으로 비켜서곤 했다. 하지만 늘 이렇게 천만다행인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른 아침 도로에서, 혹은 밤늦게 도로에서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평소엔 찾지도 않던 내가 알던 모든 신을 떠올리며 기도를 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밖에 없었다.

동물들이 차와 마주하게 되면 갑자기 비치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린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추게 되고, 더욱 피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녀석들에게 '교통사고'라는 위험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결국 '조심'은 사람의 몫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보면, 로드킬도 사람이 주의하고 조심했어야 하는 일종의 인재(人災)다. 물론 엄청난 속도로 달려대는 고속도로와 같이 자칫하면 인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마주친다면 부주의를 탓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상황을 제외하고 여타의 상황들은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조금만 더 주변을 살피고, 다른 이들이 처한 상황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경각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조심한다면 다치는 일도, 슬픈 일도 훨씬 더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과 더불어 다른 생명들까지도 참으로 공존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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