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다. 그런데 극장가에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 잔인한 4월과 여전히 슬픈 5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지 못해 어른들 모두가 죄인의 심정이 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 웃고 즐기고 할 마음의 여력이 없다.
이상하게도 올 5월의 극장가는 예년과 꽤 다르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가족용 영화나 가벼운 코미디가 눈에 띄지 않는다. 국가적 참사를 예측이나 한 듯한 특이한 해다.
애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책임자는 엄벌해야 한다. 우리는 책임을 지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인내하며 함께 걸어가야 한다. 이러한 와중에 적절하게 감정적 해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더 아픈 이들에게 영화가 어떤 작은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분노하고 울고 싶을 때, 견고하고 강력한 악에 대항해 손쓸 도리가 없을 때, 영화는 대리만족이라는 기제를 통해 카타르시스와 함께 감정의 결을 정돈하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표적'이라는 액션영화가 주는 현실적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36시간의 숨 막히는 추격.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모두 표적이다'라는 단순하게 설명되는 플롯라인, 류승룡이라는 스타의 액션 영웅으로의 변신을 강조하는 마케팅 포인트, 전직 뮤직비디오 연출자 출신 감독의 리드미컬하게 잘 짜인 액션 장면 연출 등. 영화는 오락적 요소들을 두루두루 잘 지니고 있지만, 대중적 욕망을 반영하는 장르 영화의 속성답게 한국적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비판 의식 또한 버리지 않는다. '거대한 악과 맞서는 영웅의 구도'라는 기본적인 액션영화의 속성이 어쩌면 정치적인 것과 뗄 수 없는 점이다.
영화는 단 36시간 동안 전개된 긴박한 이야기를 담는다. 한밤중에 의문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여훈(류승룡)이 누명을 쓰고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다. 여훈의 담당의사 태준(이진욱)은 갑작스러운 괴한의 습격을 받게 되고, 납치된 아내 희주(조여정)를 구하기 위해 병원에서 여훈을 빼돌려 위험한 동행을 시작한다. 사건의 음모를 직감한 강력반 경감 영주(김성령)가 사건을 맡고 있었으나, 광역수사대 송반장(유준상)이 새롭게 사건에 개입하고 영주는 손을 떼야 할 처지이지만 개인적으로 사건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 살인 용의자가 된 여훈과 동행하는 공범자 태준, 그리고 의문의 두 명의 추격자가 차츰 그들을 조여 오고, 악당이 갑작스레 정체를 드러내며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영화의 진행과 결말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어서, 이 작품을 오락용으로 단순하게 소비하게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조폭 집단은 기업을 운영하며 합법적으로 돈을 갈취하고, 정부기관에 몸담고 있는 악당은 공적인 힘을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데 적극 이용한다. 그들은 돈 때문에 사람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주위의 끄나풀들은 떨어지는 콩고물 때문에 부정에 눈감거나 혹은 앞장서서 악을 행한다. 이들을 감시해야 할 정부기관은 무능하기 그지없다. 이런 판타지 같은 일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일이다. 국가를 수익 모델로 생각하는 권력 집단은 공적 자산을 사사로이 취하고 있으며, 감시 기관이 무능해서 약자들은 끊임없이 희생당한다.
부패에 무심하다 보면 어느새 닮고 싶어 한다든가. 도덕적이어야 할 공공의 권력 집단이 부패로 만연할 때, 그 양상은 알게 모르게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부패와 악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린다. 사회가 부정과 부패에 취약할 때, 하층민은 범죄에 쉬 연루되게 된다. 영화에서 고아이기 때문에 살인 혐의를 뒤집어씌워도 따질 유족이 없다는 언급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영화가 가족애를 강조하다 보니 약간은 거북스러운 신파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안녕을 지켜주지 못할 때,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는 요즘, 그 신파 장면은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 해답으로 다가온다.
"개XX가 공권력에 덤비네." 제복으로 위장한 악당의 이 한마디에 정의는 범죄가 되어 버린다. 이 짧은 단상이 현실일 수 있다는 점이 개탄스럽다. 역동적 영상, 멀티사운드트랙 효과, 음악 등이 유혈이 낭자한 액션 신에 곁들여져 폭발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의 영화다. 고립된 남자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가운데, 포위된 영웅을 도와주는 것은 여자들이다. 사건 추적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여경감과 상관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여형사, 납치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하는 임신부의 활약이 눈부시다. '표적'은 한국 액션영화로는 드물게 차별적이지 않은 공정한 성별 관념을 가지고 여성들을 사건에 배치한다. 김성령, 조은지가 벌이는 액션은 훌륭하며, 여자들은 남자들의 일을 지연시키는 방해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을 하는 주체가 됨으로써 생명력 있는 캐릭터로 구현된다.
이 영화는 이번 달 14일부터 개최되는 제 67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었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비경쟁 부문으로 해마다 액션, 스릴러, 공포, SF 등의 장르영화 중 독특한 작품성과 흡입력을 가진 작품을 초청해 상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에는 3편의 작품을 선정했다. '표적'은 그 세 작품 중 한 편으로 곧 칸을 통해 전 세계에 선을 보이게 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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