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 도시철도(이하 지하철) 중앙로역 방화 참사(192명 사망'151명 부상)는 편리하게만 여겼던 '지하'라는 공간이 화재 등 예기치 못한 사고와 사건 발생 때 얼마나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참사를 겪은 대구는 이후 전동차 내 시트를 방염처리하고 내장재를 교체했으며, 피난에 허술했던 시설들을 보완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이 지금은 안전할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있을까?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이용객이 몰리는 평일 오전 8시 30분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안전문제를 진단해봤다. 2003년 참사 때와 같이 한 역의 승강장에 도착한 전동차에 불이 났다고 설정을 했다. 공 교수는 "참사 이후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초기 대응이 미숙하면 비관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0~2분, 화마(火魔)의 시작
지하 3층 승강장. 안내방송과 함께 승객 300여 명을 태운 전동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승강장에는 50여 명이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하 1, 2층에도 100여 명의 시민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전동차 6량 중 3번째 칸에 불이 났다. 한 남성이 옷에다 시너를 부어 불을 붙이고서 빈 의자에 던졌다. 공 교수는 "참사 이후 의자는 불연재로 교체돼 이전보다 개선됐으나, 직접적으로 불길이 닿으면 불이 붙을 수 있다"고 했다. 불은 10여 초 만에 승객의 가방에 옮겨 붙으며 덩치를 키웠다. 일부 승객의 옷에도 불똥이 튀며 차량 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몇몇 승객이 소화기(1량에 2개)를 찾았으나 승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이라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승객이 비상통화장치를 들고 전동차 기관사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승강장에 도착한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동시에 스크린도어가 개방됐다.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전동차를 빠져나왔다. 그 사이 불은 의자와 승객이 남겨둔 가방이며 짐꾸러미로 옮겨붙었고 시커먼 연기를 쉴새 없이 내뿜었다.
기관사가 소화기를 들고 진화에 나섰으나 열기와 연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았다. 급히 달려온 역무원이 소화전의 호스를 꺼내 다가서려 했으나 대피하는 사람들의 발에 계속 채였다. 지하 1층 역무실에 있던 직원 3명이 "대피하라"는 방송을 한 뒤 아래로 내려가 대피를 도우려 했으나 통제가 되지 않았다.
화재 2분 후 종합관제소 컴퓨터에 화재경보 문구가 뜨면서 경보음이 울렸다. 대구 소방안전본부 종합상황실에도 화재 신고가 빗발쳤다.
◆3~5분, 생사 가른 골든타임
화재 발생 3분. 불길이 번진 전동차 안의 온도는 300℃를 넘었고, 뜨거운 복사열로 불은 빠르게 번졌다. 8시 35분쯤 승강장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천장으로 올랐던 연기는 사람 허리까지 내려왔고, 천장에 달린 연기확산 방지벽을 넘어 지하 2층으로도 급속하게 퍼졌다. 제연설비가 가동됐지만 많은 양의 연기를 제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급히 지상으로 올라가려 뛰는 바람에 호흡은 가빠졌고, 이로 인해 연기를 흡입하기도 했다. 지하 3층에서 지상으로 빠져나온 사람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탈출에 걸린 시간은 3분 남짓(보행속도 1.2m/s). 8시 34~35분 사이 지하 1, 2층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지하 3층에 있던 사람의 3분의 2는 여전히 지하에 있었다.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 노인들이었다.
역장과 직원 3명, 공익요원, 청소용역원 등은 '현장조치 매뉴얼'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려 했으나 통제가 안 되다 보니 훈련 때처럼 되지 않았다. 2003년 참사 이후 역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상 훈련이 강화됐고, 지하철 역내 시설도 많이 개선됐지만 긴급상황 초기에 대처할 인력이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 역시 실제상황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대편 전동차는 종합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무정차 통과했다. 하지만 이 전동차가 공기를 불어 넣어 화재 전동차에 붙은 불은 더욱 세(勢)를 키웠다. 오전 8시 35분쯤 소방서와 119안전센터 선착대가 도착, 인명 구조를 시작했다.
◆6~10분, 아비규환
8시 36분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지상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한 개 층에 올랐으나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무리가 이동하자 그 뒤를 또 많은 사람들이 따랐으나 출입구가 아니었다. 지하 2층 개찰구 부근엔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개찰구는 화재감지기와 연동해 자동으로 열렸지만 좁은 출입 공간으로 병목현상이 심했다.
연기에 장애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서로 엉키며 보행 속도는 0.5m/s 이하로 떨어졌다. 공 교수는 "일산화탄소(CO) 농도(4천ppm)에 6분 이상 노출되면 정신을 잃어 쓰러지게 된다"고 했다.
지하 1층 지하상가 쪽 방화셔터가 내려와 대피하던 사람들을 막아섰다. 탈출문이 있으나 따로 표시가 없어 쉽게 찾지 못했다.
8시 39분쯤 승강장 내 연기 온도는 800도까지 상승했다. 연기가 한꺼번에 불길로 바뀌는 플래시오버 현상도 일어났다. 불은 쓰레기통과 자판기, 광고판 등으로 무섭게 번졌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마련한 유도등은 불길에 녹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역 내에 있던 소화전, 소화기, 방독면 등은 사용해볼 겨를이 없었다.
◆11분 이후, 폐허 속 악몽
8시 42분. 승강장은 이미 불바다가 됐다. 온도는 1천 도를 넘어서 웬만한 것을 다 녹였다. 연기는 지하 1층을 가득 채웠고 지상으로도 시커먼 존재를 드러냈다.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은 16개 119안전센터와 각 소방서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지하 1층을 수색한 소방관이 지하 2층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 인근에 쓰러져 있는 시민들이 다수 보였다.
공 교수는 "화재에 대비한 각종 시설을 보완하고 긴급상황 대처 매뉴얼을 세분화하더라도 실제 상황처럼 반복된 훈련으로 이를 습득하지 못한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대형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고 했다.
8시 55분쯤 철도공사 종합관제소는 모든 전동차 운행을 정지시켰다. 9시쯤 대구소방본부장은 경북소방본부에 구조대와 구급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10시쯤 소방대원들은 철도공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역 내 환기구와 인근 역을 통해 지하 3층 화재현장에 도착, 진화와 구조작업을 했다. 낮 12시 10분쯤 화재를 완전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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