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젊은이들의 놀이터다. 누구를 만나서 뭘 먹고 무엇을 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공유하며 서로 관계를 확장한다. 그래서일까. '트위터 도사'로 불리는 이원희(57) 씨가 더 튄다.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트위터 팔로어만 6만 명, 페이스북 친구도 2천500명에 달한다. 트위터 도메인(@dosanim)이 말해주듯 그는 SNS 세계에서 '도사님'으로 불린다. 별명도 범상치 않은데 사는 곳도 수상하다. 경북 예천군 금당실 마을의 사괴당 고택에서 도심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이 씨의 삶은 파고들수록 더 궁금해진다. 이달 2일, 예천 사괴당에서 그를 만났다.
◆고택에 사는 SNS 도사님
고속도로에서 내려 금당실마을로 이어지는 굽은 길로 차를 몰았다. 사방에 곧게 뻗은 초록 나무의 기운과 날씨 덕분인지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괴당 고택으로 가기 전에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이 마을의 시간은 1970년대에 멈춘 듯하다. 녹슨 경운기와 길 한쪽에 쌓인 연탄재들, 붉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하다방 건물은 문 앞에 말려놓은 밀대마저도 한 폭의 풍경이 된다. 이 씨가 사는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발길을 사괴당 고택으로 돌렸다. 양반가의 기품이 느껴지는 대문 앞에 있는 문패가 수상하다. 전통술빵연구소는 그렇다 쳐도 '트위터 학교'라는 문패는 고택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만난 이 씨는 상상과 달랐다. 젊은이들이 주축인 SNS를 주름잡는 '도사님'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였다. 이 씨는 올해 8월 8일이 되면 예천으로 이사온 지 만 3년이 된다. 그의 말투는 경상도 방언 화자인 기자에게 완전한 '서울말'처럼 들렸다. "맞아요. 서울 사람." 그가 답했다.
"아버지 고향이 경북 영덕, 어머니는 경주 사람이에요. 부모님 고향이 경북이니까 제 피에도 경북 피가 흐르잖아요. 처음에는 지리산에 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다가 못 가게 됐고, 서운했던 차에 이 고택을 찾았어요. 사괴당 고택 이전 관리자가 인터넷으로 이 집을 내놨는데 며칠 뒤에 와서 이 대청마루에 누워보고 바로 계약했어요. 그날이 굉장히 더운 날이었는데 대청마루에 앉으니까 그늘이 지더라고요. 한옥이 참 과학적이죠."
◆PC방에서 찾은 길
중년 남성이 컴퓨터, 인터넷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 이 씨에게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뒤 이와 관련된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했다. 그때가 1997년 외환위기 즈음이었다. 세상이 싫어서 피한 곳은 PC방이었다.
"아내한테 매일 1천원씩 받아서 PC방에 갔어요. 알바생 꼬셔서 1천원 내고 하루종일 노는 생활을 1년 동안 했는데 돈 안 들이고 돈 버는 법이 보이더라고요. 바로 '도메인'이었습니다. 도메인 몇 천 개를 등록해서 외국인에게 팔면 돈이 생겼어요."
길을 찾자 방법이 보였다. 인터넷의 대중화로 온라인 광고가 새로 등장했을 무렵 이 씨는 '애드웨어'를 개발했다. 애드웨어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때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광고 프로그램이다. 이 씨는 "그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 국내에서 거의 처음으로 애드웨어를 만들었는데 하루 만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 당시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딱 3일 돈을 벌고 관뒀다. 돈이 갑자기 많이 생기니까 불안해지더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엮인 인연은 2009년 트위터로 이어졌다. 애드웨어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트위터는 소통이 목적이었다. 그가 트위터에 입문한 것은 20, 30대와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젊은 세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권위를 버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사라는 캐릭터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도사' 캐릭터를 잡았어요. 도사는 도산데 완벽하지 않고 헛소리만 삑삑 하고 마누라가 한마디 하면 꼼짝도 못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제 캐릭터에요. 사람들은 SNS에서 친구를 맺을 때 '내가 저 사람의 친구로 어울릴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저는 누구든지 편하게 친구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처음에 'dosa' 도메인을 쓰려고 했는데 일본 사람이 이미 쓰고 있길래 'dosanim'으로 골랐어요. 하하."
◆SNS, 양날의 칼
현재 이 씨의 글을 받아보는 트위터 '팔로어'(follower)는 6만 명 가까이 된다. 페이스북 친구도 2천500명 정도로 기자의 페이스북 친구 250명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이 씨가 도심과 먼 고택에 살고 있어도 누구보다 세상 소식에 빠른 이유도 다 SNS 덕분이다. 그는 SNS의 파워를 피부로 느낀 적이 많다며 '뻥튀기 사건'을 소개했다.
"예천에는 삼강주막 막걸리 축제가 있어요. 축제 때 팔려고 유기농 쌀로 만든 뻥튀기와 전통술빵을 200만원어치나 만들었는데 그날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불어서 거의 못 팔았어요. 밖에 두면 눅눅해지니까 고택에 방마다 뻥튀기를 넣어뒀는데 4일 뒤에 손님 예약이 있어서 뻥튀기를 빨리 처리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뻥튀기 좀 사달라'고 글을 올렸더니 사람들이 3만원, 5만원어치 이렇게 다 사가서 3일 만에 다 팔았어요. 골치 아픈 사건이었지만 두고두고 재밌는 얘깃거리가 됐어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도 SNS식 '마녀 사냥'에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팔로어 한 명이 이 씨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트위터 활용법을 알려달라"고 힘들게 하자 그는 "나는 바쁜 사람이니 유료로 가르쳐주겠다"고 말을 돌리고 끊은 적이 있었다. 그게 화근이 됐다. 트위터에는 '도사가 트위터로 장사한다. 상업적인 사람'이라는 비판 글이 빠르게 퍼졌다. 이 씨는 "지금은 트위터에 옷도 팔고, 음식도 팔고, 상업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트위터를 순수하게 볼 때였다. 이 이야기가 300~400건 정도 '리트윗'(retweet: 전달하기)됐고 사람들은 '도사 이제 끝났다'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대신 정면 승부를 택했다. 그는 "돌 던진 사람을 욕할 필요 없다. 판을 뒤집으면 된다"고 말했다. "제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사과였어요.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진심을 전달했습니다. 이 상황을 뒤집는데 단 이틀밖에 안 걸렸어요. 하지만 그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기로 결심하고 '도사학당'을 설립했다. 도사학당은 트위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온라인 공간이다. 고택 앞에 있던 '트위터 학교' 문패에도 이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정치인과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이들도 도사 학당을 거쳐 갔다. 이 씨는 "트위터 기술을 전수하는 곳이지만 팔로어 숫자만 늘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누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마녀사냥'을 당했을 때 SNS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SNS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정신 교육을 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친구를 만드는 법
사괴당 고택은 크고 너르다. 안채 앞으로 너른 마당이 펼쳐지고, 대청마루에 앉아 뒤를 바라보면 창문 안으로 낮은 담장과 산이 그림처럼 걸린다. 이 고택은 18세기 무렵 원주 변 씨인 사괴당 변응녕이 터를 잡고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모든 방은 군불을 때서 데우는 전통 방식이다. 그래서 흔한 '고택 민박' 집으로 분류하기엔 역사가 너무 깊고 길다.
이 씨는 사괴당 고택을 따로 홍보하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엮인 인연들이다. 이 씨는 "얼마 전에 트위터 친구들이 고택에 놀러 와서 마당에 잡초를 같이 뽑다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더라. 오늘 아침에도 내가 잡초를 잔뜩 뽑았다"며 마당에 널린 잡초를 가리켰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너른 마당에 서서 '도사님'께 SNS 비법을 캐물었다. 평범한 아저씨인 이 씨가 SNS에서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유명해진 데는 그만한 비법이 있을 것 같았다.
"오프라인 친구보다 더 챙겨주는 행동을 많이 하면 돼요. 수없이 많은 이야기 중에 다른 사람 험담한 것은 빼고, 위로나 칭찬할 수 있는 것,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SNS를 하면서 위로받고 칭찬받고 싶어해요. 셀카를 계속 찍어서 올리는 사람에게는 '이뽀요! ㅎㅎ',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토닥토닥' 이렇게 댓글 달고. SNS로 뭔가를 얻고자 하지 말고 내가 뭘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친구'라는 말의 뜻이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잖아요."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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