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보이는 것

필자가 시각장애인시설에서 경험한 한 사례이다. 그 나름 시설규모가 꽤 컸기에 직원들도 수십 명에 달했다. 물론 어느 집단이라도 신참과 고참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곳의 신참과 고참은 입소해 있는 장애우가 보고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됐다. 무슨 내용이냐면, 시설에 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은 모두가 장애우들 상태가 시각장애우인 만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고참들은 다르다. 즉, 입소 장애우들이 자신들과 같이 본다는 것을 인정하고 행동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시설에 입사한 지 일주일 정도 된 신참이 장애우들이 생활하는 방 청소를 했다. 신참은 당연히 장애우들이 방을 대충 치우는지 꼼꼼히 정리하는지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몸살 기운도 있고 주변 고참 직원이 감독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두 번 할 걸레질을 한 번만 했다. 하지만 기운이 없었기에 청소시간은 평소와 같이 걸렸다. 신참은 당연히 장애우들은 모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시설에 입소한 지 좀 오래된 어르신 한 분이 '오늘은 청소를 대충대충 하네' 하고 지적하지 않는가. 그때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너무도 신기해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하고 질문을 했다. 어르신은 그냥 웃기만 하고, 답이 없었기에 신참은 늘 신기하게 생각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일이 시설에서 자주 생기는데, 그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신참은 고참에게 물었다. 고참의 답은 간단했다. "이곳에 오래 근무하면 본다는 것이 눈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시각장애 입소자들은 기운으로 느끼고, 숨소리로도 느끼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도 봐.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감각으로 보는 거지."

정말 그랬다. 시각 장애우들은 상대의 목소리만 듣고도 상태가 어떤지를 아는 것은 당연했고,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헤아릴 수 있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눈을 감고도 웬만한 것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보이고 들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할 뿐 감각으로 느껴서 보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마음의 소리, 즉 감각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더 정확하고 더 깊을 수 있을진대 그냥 흘려보내기에 진짜 중요한 것은 못 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안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눈을 감고 온몸으로 사물을 보는 자세를 가져보면 타인에 대해서도 더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김제완 사회복지법인 연광시니어타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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