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앓는 병을 고물상에서 안다?'
이름과 주민번호, 병명 등 개인의 신상 및 질병 정보가 담긴 약국 처방전이 고물상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과 이를 악용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보관 기관이나 관리'감독기관이 개인정보 보호에 소홀하다. 매일신문은 이미 두 차례 보도(2009년 1월 12일 자 1면'2012년 1월 4일 자 5면)를 통해 개인정보가 담긴 공공기관과 병원의 기록물 폐기 관리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파지 운송업자 A(55) 씨는 최근 파지압축장에서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주민등록등본, 병원 진료기록부, 법원 판결문, 보험증권, 약국용 처방전 등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곳은 대구에 있는 고물상이 폐지를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기 전 압축하는 작업장. 각종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가 여러 고물상을 거쳐 이곳으로 온 것이다.
A씨가 내보인 한 움큼의 약국용 처방전을 살펴봤다. 환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질병분류번호, 처방 약품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질병분류기호를 검색하니 병명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기자가 검색을 해보니 감기부터 전립선비대증, 방광장애 등 환자가 앓는 병이 그대로 드러났다.
A씨로부터 건네받은 문서 중에 자동차등록증 사본도 있었다. 자동차등록증에는 차량 소유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와 차량명, 차량번호까지 기록돼 있다. 문서의 특성상 차량을 등록한 개인이 버린 것일 수도 있어, 시민들이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를 파기할 때 소각하는 등의 주의가 필요하다.
A씨는 "5개월 전부터 고물상에서 파지압축장으로 종이를 실어나르고 있는데,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를 쉽게 볼 수 있다"며 "개인정보 유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 각 기관의 폐기 기록물 관리는 엉망이었다"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컴퓨터로 처리되는 개인정보 파일뿐만 아니라 종이문서에 기록된 개인정보도 보호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은 폐기할 때 전자파일은 복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영구 삭제하고, 기록물'인쇄물 등은 파쇄 또는 소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많아 개인정보가 아무렇게나 다뤄지고 있다. 6일 오후 기자가 찾은 대구 달서구의 한 파지압축장에는 파쇄하지 않은 약국 보관용 처방전이 잔뜩 쌓여 있었다. 고무줄로 묶여 있거나, 다른 종이 더미 틈에 끼어 있었다. 처방전 대부분은 2011년에 발급된 것으로 의무 보관기간(2년)이 지났지만, 정식 폐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원본 그대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들이었다. 일부 처방전은 보관기간이 지나지 않았다.
보건소는 약국이 처방전을 2년 동안 보관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보관기간 내 처방전이 버려지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 보관기간이 지난 처방전들은 약국이 자체적으로 폐기하게 돼 있어 처방전이 아무렇게나 방치되거나 유출되더라도 이를 감독할 곳이 없다. 현행 약사법에는 폐기에 대한 내용이 없는 탓이다.
대구시약사회 관계자는 "무조건 파쇄가 원칙이다. 약사회는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폐기업체 한 곳을 지정해 각 약국들이 이곳을 통해 처방전을 폐기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회원 약국이 1천200개가 넘어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처방전 폐기업체 측은 "약국에서 보관기간이 지난 처방전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파쇄한다"며 "업체를 통해서 고물상으로 흘러가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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