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잠기고 있는데도 제자를 구하다 숨진 단원고 교사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15일이 스승의 날이건만 그들은 웃는 낯으로 제자들이 전하는 카네이션을 받지 못하게 됐다. 이를 두고 교사는 역시 존경받을 만한 이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평소 보이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교사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정부가 교사의 권위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그런다고 학생, 학부모와 교사 간 불신의 벽이 낮아지느냐다. 대통령의 권위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교사의 권위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든든함 믿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지, 그리고 그 믿음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게 우선 아닐까. 스스로 자세를 낮춰 제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대구 교사들을 만나 그들이 전하는 교육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진춘 대구고 교사 '봉사활동으로 인성 가꾸기'
대구고등학교 공진춘(54) 교사는 봉사활동 전도사다. 인성을 가꾸는 데 봉사활동만 한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고 아낄 줄 아는 학생은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어요. 인성이 갖춰지면 학력도 따라옵니다.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봉사활동에 매진한 공 교사에겐 자연스레 각종 상이 뒤따랐다. 지난해만 해도 자원봉사 우수 지도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계명대가 주최한 '제17회 계명 참스승상 시상식'에서 종교'사회봉사 분야 수상자로 뽑혔다. 그는 참스승상 상금 일부를 다시 학생들을 위해 내놨다. 대구고 이용도 교장과 상의 끝에 그랜드 피아노를 사는 데 보탰다.
공 교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꼽는 봉사활동은 지난해 남구 이천동의 99계단을 벽화로 꾸민 일. 미술을 전공한 공 교사는 미술 동아리, 봉사 동아리 학생 30여 명과 학부모 샤프론 봉사단과 함께 5월부터 10월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해 벽화를 그렸다.
"시커멓고 더러운 계단과 인근 벽이 사계절을 표현한 벽화 덕분에 화사하게 탈바꿈했죠. 마을이 한층 밝아졌다는 주민들 칭찬에 뿌듯해하는 아이들을 봤을 때 이 일을 벌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교단에 설 날도 이제 10년 남짓 남았다. 하지만 공 교사는 여전히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교사가 계속 성장해야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용돈과 생활비를 쥐여 주는 등 사랑을 베풀어왔지만 그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여긴다. 계명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꿈꾼다.
"교사가 자세를 낮춰 아이들을 섬기면 아이들도 교사의 마음을 알아줍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많은 어려움을 딛고 빛을 발하는 데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권성석 효명초교 교사 '교사는 내 천직'
효명초등학교 권성석(42) 교사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권 교사의 첫 직장은 대구도시철도공사. 취업 준비생들이 선망하는 공기업이었으나 그는 2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수능시험을 치러 대구교육대에 입학, 33살에 새내기 교사로 삼덕초교에 부임했다.
"2년 정도 입시를 준비한다고 생각했는데…. 6개월 정도 공부해 합격했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교사의 길로 가라는 게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그는 1, 2학기에 한 차례씩 담임을 맡은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하루 재운다. 처음 교단에 선 이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는데 아이들과 부대끼며 정을 쌓기 위해 벌인 일이다. 한 번에 8~10명씩 조를 짠 뒤 금요일 오후 집에 데려가 함께 저녁을 준비해 먹고 산책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튿날 아침 식사도 함께한 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은 친구와 놀며 추억을 만들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담임교사와 함께한다니 학부모님들도 대부분 쉽게 허락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그는 방과 후에 사비를 털어 간식까지 챙겨 먹이면서 학업 성적이 처지는 학생들을 지도한다. 수당을 따로 받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웃는 낯으로 다가가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체벌보다는 대화로 모든 걸 풀어나간다. 그것이 서로 믿음을 쌓는 길이라 믿지만 처음부터 그가 그랬던 건 아니다.
"새내기 교사 시절엔 매를 많이 들었습니다. 늦게 교단에 선 만큼 더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옛 제자들의 추억담을 듣다 보면 맞은 기억이 참 오래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아니다 싶어 회초리를 내려놨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권 교사는 한 명의 학생에게라도 기억에 남는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욕심을 버렸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삶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고 전 엑스트라잖아요. 아이들이 초교 생활이 즐거웠다고 기억할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전 그냥 하루하루 교사의 몫을 다하려고 노력하자는 생각뿐입니다."
◆김형섭 마자학교 교장 '한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대구시교육연수원 김형섭(57) 수련부장의 또 다른 직책은 '마음이 자라는 학교(이하 마자학교)' 교장이다. 마자학교는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중학생을 위해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대안학교. 그는 수련부장이나 교장보다 마자학교 아이들이 부르는 '대장 쌤'이라는 말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마자학교는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대구시교육연수원 내에 있다. 마자학교 주변 경치는 장관이다. 하지만 김 교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별로 없다며 웃는다.
"30여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데요. 그동안 정말 교사 생활을 편하게 했다고 반성하는 중입니다. 신경 쓸 것도 많고 체력도 달리네요. 하지만 지금이 교사 생활 중 가장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김 교장이 본격적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시지고등학교에 근무하던 2012년 상담 업무를 맡으면서부터다. 그러다 마자학교 개교 소식을 듣고 근무를 자원했다. 마자학교는 기수별로 운영된다. 일반 학교의 1학기가 이곳에선 1기다. 작년 하반기 정식 개원, 현재 2기 학생 30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 기간이 끝나면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간다.
"곧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아이들인데 외면할 순 없잖아요. 이 아이들은 부모, 학교, 친구로부터 받은 상처로 일탈 행동을 하는 겁니다. 홍역을 앓는 것처럼 쉽게 청소년 시기를 지나는 아이가 있는 반면 힘겹고 길게 그 과정을 겪는 아이도 있는 법이죠."
김 교장이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진심을 담아 아이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김 교장의 소통법이다. 그는 학부모들도 이 과정을 거쳐야 아이들과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어요.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것 말고 넘어질 때마다 툴툴 털고 일어선 것을 자랑하라고요. 힘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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