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동맥류로 쓰러진 아내 돌보는 박춘봉 할아버지

월 70만원 수입에도 둘이라서 감사했는데 자네마저…

박춘봉 할아버지가 뇌동맥류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흐릿한 눈동자로 눈만 껌뻑이며 누워있는 아내 김초자 할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박춘봉 할아버지가 뇌동맥류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흐릿한 눈동자로 눈만 껌뻑이며 누워있는 아내 김초자 할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박춘봉(69) 할아버지의 윗옷 안주머니에는 아내의 사진이 항상 들어 있다. 아내와 떨어져 있을 때도 사진을 꺼내보면 함께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의 아내 김초자(73) 할머니는 지난 1월 뇌동맥류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흐릿한 눈동자로 눈만 껌뻑이며 누워 있다. 할아버지가 눈앞에서 없어지면 눈물을 글썽이며 슬퍼한다. 40년을 함께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떨어져 있는 잠시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나한테는 이 사람밖에, 이 사람한테는 나밖에 없어. 그런데 이 사람이 쓰러져서 이렇게 누워 있으니 목구멍으로 밥도 안 넘어가…."

◆자식 없이 두 사람만 지내 온 40년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전국의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생계를 이어갔다. 야시장이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고리 던지기, 인형 맞히기 등의 놀이로 돈을 벌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할머니를 만났다. 31세의 할아버지는 고운 얼굴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35세 할머니를 만나고 곧바로 결혼을 결심했다.

"그때는 노총각에 노처녀였지.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잘 챙겨줄 누나 같은 사람이 맞을 거라면서 지인이 소개시켜 줬는데 정말 평생을 잘 챙겨줬어."

결혼한 후 할아버지는 떠돌이 장사를 접었다. 무거운 장비들을 지고 다니느라 허리도 탈이 나고 젊은 시절부터 앓았던 위염과 간염 등의 지병도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미장일을 배워 간간이 일을 나갔고, 할머니는 타고난 요리 솜씨 덕분에 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끊임없이 시련이 찾아왔다. 건축현장에서는 인건비 때문에 벽돌을 쌓는 미장기술자를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할아버지의 건강도 현장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 게다가 할머니는 결혼 이후 세 번의 임신을 했지만 세 번 모두 아이를 잃었다.

"세 번째 유산을 하고 난 뒤에는 둘이 알콩달콩 잘 살자고 서로를 다독였지. 우리 인생에는 아이가 없는 대신 좋은 아내가 있고, 좋은 남편이 있는 거라고…."

노년에 접어든 부부는 돌봐줄 자식은 없었지만,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서로를 챙기고 금슬 좋은 부부였다. 일을 하지 못해 월 70만원의 수급비로 월세 10만원짜리 작은 방에 살면서도 서로가 있어 행복했다.

"팔불출이라고 욕할까 봐 자랑하기는 부끄럽지만 요리 솜씨며 살림 솜씨며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었어. 허름한 집이지만 광이 날 정도로 집을 깨끗하게 치웠어. 남편 건강에 좋다며 공기 좋은 동네를 찾아 몇 번이나 이사를 할 정도로 내 생각도 끔찍히 했지."

◆뇌동맥류로 쓰러진 할아버지의 반쪽

가난한 삶이었지만 서로 의지할 수 있어 행복했던 부부에게 큰 불행이 닥쳐온 건 올해 설날 직전이었다. 설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며 시장으로 떠난 할머니가 몇 시간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걱정이 됐지만 할머니는 휴대폰이 없어 마음만 졸이고 있었다.

얼마 뒤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전화였다. 할아버지는 한달음에 뛰어가 할머니를 집으로 데려왔다. 할머니가 조금 어지러워서 쓰러진 거라며 안심시켰기 때문에 할아버지도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온 할머니는 점점 의식을 잃어갔고 결국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에 와서 약 몇 개를 먹더니 '이제 괜찮다' 하더라고. 옆에서 얘기를 하는데 사람이 말이 점점 없어지더니 불러도 대답을 안 했어. 살면서 그렇게 무서웠던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겁이 덜컥 나서 정신없이 구급차를 불렀지."

할머니는 뇌동맥류 판정을 받고 곧바로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말로 하는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수술 이후 할머니의 의식이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눈으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40년을 함께해 온 두 사람이 나눌 수 있는 대화다.

수술 이후 할머니는 콧줄을 통해 유동식을 섭취하고 기저귀를 차는 등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할아버지는 이렇게라도 살아있어 준 할머니에게 그저 고맙다. 다만 가난한 삶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비와 치료비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평소에도 55㎏이 채 나가지 않던 할아버지는 넉 달간 할머니를 돌보면서 45㎏의 깡마른 몸이 됐다. 하루에 밥 한 끼는커녕 죽도 겨우 넘긴다. 그마저도 할머니 간병을 하려고 억지로 먹는다.

"내가 몸이 건강해서 돈이라도 많이 벌어뒀으면 하는 후회도 되지. 저 사람이 버텨주는 한 나도 버텨야 하는데 치료비 부담이 버거워서 어찌 사나 걱정뿐이야."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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