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은 아일랜드 중서부 갈웨이를 무대로 한다. 푸른 초원에 부는 바람과 언덕을 따라 시냇물이 흐르는 장면들은 아일랜드의 서정을 잘 담고 있다.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일랜드 시골 마을의 풍광과 독특한 결혼풍습을 잘 묘사하여 관광명소가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1952년 아일랜드는 영화 속과는 달리 국론분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국가들이 재건을 위해 국력을 총결집하고 있는 사이 켈트의 호랑이 아일랜드는 폐쇄적 경제를 유지한 채 잠자고 있었다. 바로 이때 경제학자 위태커(T.K. Whitacker)가 호랑이를 깨운다. 국가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영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과감히 경제를 개방하고 투자유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58년 그가 만든 경제발전전략은 이듬해 새이넌 수출자유지역(SFZ:Shannon Free Zone)으로 탄생했다. 아일랜드 중앙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새이넌 강가에 자리한 이곳은 세계 최초의 수출자유지역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110개 해외기업이 입주하여 33억 달러를 수출하는 산업단지로 변모하여 아일랜드 경제의 기함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대구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뜨겁다. 국가산단 조성은 침체된 대구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일찍부터 거론되었기에 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여기서 오랫동안 낙후되었던 아일랜드 중서부의 경제발전을 견인한 새이넌 산업단지 사례를 통해 대구 국가산단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을 살펴보자.
첫째, 조성보다는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1959년에 만들어진 SFZ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성되었고 대외 여건에 맞추어 관리되었다. 조성 초기에 투자유치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으나 지방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단기실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투자기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고 지원책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그 결과 오늘날 SFZ는 아일랜드 최고의 산업단지가 될 수 있었다. 대구에 조성되는 국가산단은 광역지자체 중에서는 가장 늦게 조성되는 관계로 자칫 단기적인 실적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늦어질수록 조급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내실있는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둘째, 인프라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 SFZ는 1959년부터 교통, 에너지, 통신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1977년 스미스타운 산업단지, 비즈니스센터, 디자인센터 등을 추가로 건립하여 안정적인 입주 여건과 기업 지원 시설을 확충했다. 오늘날에는 새이넌 개발재단이 인프라 업무를 총괄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대구 국가산단도 낙동강을 따라 테크노폴리스, 성서산업단지, 3공단, 서대구공단 등을 연결하는 지역산업 발전의 중심축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인프라 확충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해외기업의 투자유치에도 노력해야 한다. SFZ에 투자한 기업의 분포를 보면 미국 57%, EU 27%, 영국 6%, 일본 2%로 나타나고 있고 업종별로 보면 항공,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건강, 제약산업 등이 집중되어 있다. SFZ는 해외기업의 직접투자(FDI)에 집중하여 법인세 감면,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경쟁력 있는 금융부문 구축, 편리한 물류 및 통신인프라 구축 등을 바탕으로 투자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대구 국가산단의 경우 지역 내 기업의 이전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해외기업의 투자유치에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명장 존 포드 감독이 영화 속에서 그렸던 갈웨이 지방은 일찍부터 빼어난 풍광을 자랑했지만 산업이 없어 인구가 줄어들던 곳이다. 오늘날 이 지방은 새이넌 지역과 불과 100㎞도 떨어지지 않아 SFZ의 개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덕분에 아일랜드 중서부지방 일대는 제조업과 관광산업이 동반성장하는 현장이 되고 있다.
김영우/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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