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마오의 세 번째 부인, 장칭

1938년 상하이에서 온 24세의 여배우 남평(藍萍)은 근 1년간 홀아비로 지내던 45세의 마오쩌둥과 결혼한다. 마오의 세 번째 부인으로 역사에 등장한 그녀는 장칭(江靑)으로 개명한 후 20세기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다. 그들의 결혼은 많은 당원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당의 지도자들은 그녀가 앞으로 30년 동안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들의 결혼을 승낙했다.

마오의 부인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녀는 1963년 경극(京劇) 운동을 후원하면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의 문화개혁운동은 점차 지식인들에 대한 장기적인 공격으로 바뀌었고, 1966년 문화대혁명을 통해 그녀는 중국 공산주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냉혹한 여성 정치가로 떠오른다.

마오가 죽은 해인 1976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1981년 문화혁명 4인방의 한 사람으로서 반(反)혁명죄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고 투옥된다. 마오의 부인이자 충직한 비서로 혁명과 전쟁의 시기를 함께 겪었던 장칭은 공개재판에서 "나는 마오의 개로 그가 물라고 하면 물었을 뿐이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1983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그녀는 1991년 오늘 자살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