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형 재난, 대구경북은 안전한가] (2)안전불감증의 민낯

무사안일·조급증…우리 주변에 방치된 '세월호'

지난달 30일 대구 달서구 한 고층아파트에서 초고층건축물 화재대비 소방대원 현장훈련이 실시돼 소방대원들이 연기에 질식한 주민(인체모형)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지난달 30일 대구 달서구 한 고층아파트에서 초고층건축물 화재대비 소방대원 현장훈련이 실시돼 소방대원들이 연기에 질식한 주민(인체모형)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비상시 탈출로가 되는 아파트 복도와 계단 곳곳에 자전거와 박스 등이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비상시 탈출로가 되는 아파트 복도와 계단 곳곳에 자전거와 박스 등이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세월호 침몰 참사 후 재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시민들의 안전 의식도 예전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과거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에 무관심한 상태로 퇴행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배인 '설마', '빨리빨리', '대충대충' 등의 무사안일 의식과 조급증 때문이다. 안전 교육 및 훈련의 부재도 요인으로 꼽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중요성은 크게 부각됐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안전 불감증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소방훈련 '귀찮고 불편해'

우리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의 안전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비상시 탈출로가 되는 아파트 복도와 계단 곳곳에 자전거와 박스 등이 통행을 가로막고 있다. 불이 났을 때 연기가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화문을 닫히지 않게 고정해 놓는 일도 다반사다.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의 방화관리자 김모(52) 씨는 "한 번씩 복도나 계단 등을 점검하면서 주민들에게 복도에 있는 적재물을 치워달라고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방화문도 닫아 놓으면 며칠 있다 다시 열어놓는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소방훈련도 귀찮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 훈련 때 소방대원들은 비상시에 대비해 엘리베이터를 비상모드로 전환하는데 이때 주민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관리사무실에는 "엘리베이터를 못 쓰게 하면 어떡하나"는 항의전화가 잇따른다. 달서구소방서 한 직원은 "대부분 아파트 주민들은 소방훈련 자체를 꺼리고 불편해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소방훈련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영화관이나 쇼핑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에서도 안전관리와 안전의식이 허술하다. 영화관을 자주 찾는다는 회사원 정지영(24) 씨는 "비상계단을 가리키는 표시등이 있으니 굳이 위치를 알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화재가 날 거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형마트도 비상구가 마련돼 있지만 이를 모르는 이용객들이 많다.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 "비상구가 있어요?"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기업체 교육 현장에서도 안전에 대한 무관심은 여실히 나타난다. 기업체에서 소방교육을 자주 한다는 한 대학교수는 "교육시간에 처음부터 앉아서 조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처럼 안전이 이슈가 되는 시기인데도 이런데 여론이 잠잠해지면 안전에 대해 관심이나 가지겠느나는 생각이 들 때가 잦다"고 했다. 심지어 국가적 재난 등을 대비해 실시하는 민방위훈련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시민들도 적잖다. 직장인 김모(35) 씨는 "외국인 손님을 차에 태우고 가던 중에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고 차량을 통제해 난처했다"면서 "이 상황을 외국인에게 설명하려니 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시민 참여없는 교육'훈련

대구 동구 한 아파트에 사는 이종명(34) 씨는 요즘 아파트 곳곳에 비치된 소방장비에 새삼 눈길을 기울인다. 최근 들어 소화전이나 소화기 등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씨는 "집 안에 스프링클러나 화재감지기 등이 설치돼 있지만 평소에는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다"며 "소방장비 사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막상 비상시에 이런 장비들을 사용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 씨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소화기 사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우리나라 안전 교육'훈련 시스템의 부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안전 교육이나 훈련이 형식적으로 이뤄져 실효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화재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법을 알아야 할 시민들은 참여하지 않고, 소방관이나 재난 담당자들만의 교육이나 훈련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안전교육을 하지만 주민을 참여시키는 교육이나 훈련은 사실상 없다. 소방서가 시행하는 주민대피 훈련에도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다. 또 이 훈련 때 관리사무소가 대피 방송을 아파트 전체가 아닌 단지 내 공원이나 놀이터에만 들리도록 해 실질적인 훈련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영화관 또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본사가 마련한 '비상 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한 달에 한 차례 훈련하고 있지만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은 없다.

도시철도는 어떨까.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교육과 훈련 등이 한층 강화됐지만 승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매년 종합훈련과 부분훈련이 이뤄지고 있지만, 모두 역 직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역사마다 대합실에서 해마다 4차례에 걸쳐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비상탈출과 화재진화 교육을 벌이고 있지만 일부 시민만 참여해 교육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직장도 형식뿐인 안전교육

재난 대처 요령은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학교에서조차 교육이나 훈련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수업 자체를 자습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현행 학교보건법에는 초'중'고교에서 안전'재난교육을 연간 6시간 이상 실시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학교는 많지 않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보건교사 배치 학교의 보건교육 실시율은 2010년 66.4%에서 2013년 23.1%로 줄었다. 경북도 같은 기간 75.5%에서 66.6%로 감소했다.

대구 수성구의 A초교 교사는 "민방위훈련을 할 때 재난에 대비해 학생들이 교실에서 특정 장소로 이동하고 몇몇 학생이 소화기 작동이나 응급환자 이송 등 시범을 보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입시 부담이 큰 고교는 보건수업 시간에 자습하는 등 상황이 더 나쁘다. 교육을 하더라도 실습은 없고 동영상을 보여주는 정도이다. 체육이나 보건 교사가 안전교육을 함께 맡고 있어 전문성에도 문제가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무직과 판매직은 매 분기 각각 3시간, 생산직은 매 분기 각각 6시간 이상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달서구의 자동차부품업체에 다니는 신모(41) 과장은 "소방서가 한 번씩 소방점검을 나오는 것은 봤지만 안전과 관련해 별다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교육을 하더라도 체험이 아닌 이론 위주다. 안전보건공단 대구지역본부는 안전체험교육을 위해 경산안전체험교육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라서 기업들의 이용이 소극적이다.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는 "우리나라의 안전 훈련이 너무 형식적이고 정형화돼 있어 실제 재난에서 활용할 수 없는 정도다. 상황별로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하고 많은 시민이 체험할 수 있는 반복훈련을 해 대처능력이 몸에 배야 한다"고 했다.

전창훈 기자 apolonj@msnet.co.kr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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