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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야, 선생님이 책 썼어" 50년 전 장애 제자 찾는 80대 老스승

심한 언어장애 외톨이 아이 3년 동안 선생님·엄마 역할

50년 전에 만난 장애가 있던 제자를 애타게 찾는 전직 교사 이태남 씨가 제자와의 일화를 기록한 수기집
50년 전에 만난 장애가 있던 제자를 애타게 찾는 전직 교사 이태남 씨가 제자와의 일화를 기록한 수기집 '사랑은 사랑을 낳고'를 들어 보였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50년 전에 만난 장애가 있던 제자를 애타게 찾는 80대 노령의 선생님이 있다. 이태남(81) 씨다. 그가 쓴 책 '사랑은 사랑을 낳고'(블루나인패키지 펴냄)는 30대 교사 시절 3년간 특수교육 대상 아동과 겪은 생생한 체험 수기이면서, 가장 마음을 줬던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 씨는 1965년 대구 신천초등학교 1학년 6반 담임을 맡았다. 반 아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경수. 심한 언어장애를 갖고 있었고,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늘 혼자였다. 또 경수는 고아였다. 학교 앞 혜성고아원에 살았다.

이 씨는 경수에게 끌렸다. 단지 불쌍하고 가여워서만은 아니었다. 경수는 말과 행동만 보면 저능아였지만 미술 시간에 독창적인 찰흙 작품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고, 거듭 연습해 글씨도 쓸 줄 알았으며, 심부름을 가서 잔돈도 거슬러 올 줄 알게 됐다. 또래들보다 느리고 서툴 뿐이었다.

경수는 선택적 장애를 갖고 있었다. 당시 대구의과대학의 소주용 교수가 경수의 지능을 검사했더니 아이큐(IQ'지능지수)가 127로 나왔다. 언어 능력은 검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낮았지만, 만들기나 미술에는 소질이 있었다. 그런 특성에 맞는 교육이 경수에게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특수교육 여건은 열악했다.

그럼에도 이 씨는 3년 동안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엄마처럼 경수를 가르치고 보살폈다. 이후 전근을 가면서 헤어져 다시는 경수를 보지 못했고, 현재 근황도 모른다.

이 씨는 1987년에 이 책을 처음 펴냈다. 1990년에 한 번 더 펴냈고, 올해가 세 번째 발간이다. 이렇게 30년에 걸쳐 책을 펴낸 이유는 자신의 체험을 현장의 특수교육 교사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아직도 국내에 특수교육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다. 이 씨는 최근 이 책 약 1천 권을 대구시내 특수학교 및 일반학교 특수학급 교사들에게 전달했다.

책을 펴내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죽기 전에 경수를 꼭 만나고 싶어서다. 책이 널리 퍼져 어느덧 50대 혹은 60대가 됐을 제자를 찾아줬으면 해서다. 이 씨는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 하는 아이로 구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환경에서 경수는 소외됐다"며 "경수가 자신의 다른 능력을 살려 꼭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또 앞으로는 경수 같은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 이 씨는 1954년 교사 생활을 시작해 1999년 대구 수창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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