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자신의 가치를 아는 작은 영웅들

모두가 나를 주변인이라지만 "난 내 삶의 주인공"

사진위
사진위 '피부색깔=꿀색' 사진 아래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지금 극장가에서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눈길을 끈다. 벨기에, 한국 합작의 '피부색깔=꿀색'과 미국 작품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향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평범한 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따스하게 적신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기구한 자신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며 함께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것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다큐멘터리가 어떤 강력한 주장을 해서 부담스럽다거나 지루해서 재미없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편견이다. 매끄럽게 구성되지 않더라도, 가공되지 않은 삶의 진실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큰 울림과 함께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자 누구나 이 시대의 주인이고 영웅이라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매우 민주주의적인 장르다.

'피부색깔=꿀색'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영화다. 개성적이고 귀여운 그림체에 아이가 주인공이며, 대한민국의 현대사 및 성장기에서 겪는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어 청소년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작품성과 문제의식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2012년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유니세프상, 2013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 2013년 브라질 애니마문디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전정식은 1965년쯤 한국에서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졌고, 1970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벨기에인 양부모는 이미 자녀가 4명이나 있는데도 한국 아이 정식을 입양하여 자신의 자녀들과 똑같이 기른다. 가운데 이름 글자 '정'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라 정식은 벨기에에서 융이 되었다. 장난감과 먹을 것이 많은 유럽의 부자나라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자라던 아이 융은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의 남다른 외모, 다른 취향으로 소외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국인 입양아 문제를 다루는 여타의 다큐멘터리에 비해 이 작품이 가지는 눈에 띄는 장점은 주인공을 피해자이거나 연민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슬프고 우울하지 않다. 존재 자체로 인해 어디에서나 이방인 의식을 느끼는 주인공이 때론 불쌍하게 생각되지만, 여타 남자아이들처럼 장난스러운 성장기를 겪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악당처럼 느껴진다. 입양아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며 기죽지 않는 소년을 관찰하는 시간은 흐뭇하다. 영화는 그래서 산뜻하고 쿨하고 재미있다.

마흔 살이 넘어 처음 한국을 방문해 서울 거리를 거니는 중년의 융을 담은 다큐멘터리 장면, 어린 시절을 재연하는 애니메이션, 가족의 한때를 기록한 벨기에 아빠의 비디오 클립, 그리고 뿌리를 탐색하는 융의 심리를 담은 추상적 그림이 교차적으로 펼쳐지며 영화의 결을 다이내믹하게 장식한다.

'스타로부터의 스무 발자국'은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최고의 가수들 뒤에서 백코러스를 하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엘튼 존, 롤링 스톤즈, 브루스 스프링스틴, 데이빗 보위, 스팅, 티나 터너, 이 최고의 스타들 뒤에 선 그들. 화려한 무대의 가장자리에 선 백업 가수이지만 노래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은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다. 백인 중심의 대중음악계에 일대 격변을 일으킨 1950년대 로큰롤의 등장 이후, 흑인 여성 백보컬의 출현은 흑인 민권운동과 여성운동의 성장과 함께한다.

그들은 가스펠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 아름답고 청순한 흑인 공주 다이애나 로스, 섹시 다이너마이트 퀸 티나 터너 등, 딱 한 명의 여왕들 외에 흑인 여가수들이 허용되지 않았던 비정한 음악 산업계의 관행으로 인해 가수로서 성공을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최고여서, 1970년대 록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보이지 않은 주역이다.

생계 유지를 위해 청소부가 되었던 달린, 솔로 앨범으로도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리사, 짜릿하면서 소울풀한 목소리를 가진 메리, 할머니가 되어서도 엘튼 존의 투어 공연을 함께 하고 있는 타타, 마이클 잭슨 장례식의 호소력 짙은 메인 보컬로 화제가 된 주디스 힐 등 진정한 실력자들이 소울 충만한 감동의 무대를 펼친다. 동시에 쟁쟁한 록스타들의 인터뷰와 공연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아는 이름없는 당당한 그녀들이 아름답다. 그들은 꽉 막힌 사회와 업계에 균열을 일으킨 작은 영웅들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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