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는 원칙이 묵살되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빚어낸 후진국형 인재(人災)다.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을 버렸으며, 정부 당국은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우리 사회는 무기력했다.
원칙이 고속 경제 성장에 묻혀 등한시되어 온 결과이다. 외국인의 눈에도 이런 모습은 고스란히 투영된다. 그들은 대충대충 하고 과정보다 결과에만 신경 쓰는 우리의 모습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칙이 무시되는 풍토를 과감히 걷어내고, 우리나라 안전 시스템을 내실 있게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칙 안 지키는 대한민국
호주 출신 이주민 마이클 맥마티어 씨는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선원의 잘못만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그들이 과적하거나 화물 결박을 제대로 하지 않게 내버려둔 사회 분위기의 문제"라며 "애초 교육과 감시'감독이 잘돼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 같은 인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안전과 원칙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몸에 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교포 이동규(32) 씨는 "미국인들은 비상경보가 울리면 무슨 일인지 따지거나 허둥대지 않고 즉시 대피한다"고 소개했다. 얼마 전 호텔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자 실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호텔의 비상 대피 원칙에 따라 주시기 바란다'는 직원의 말에 즉각 대피했다. 당시 불이 난 정황이 없어 누가 봐도 경보기가 고장 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호텔에 숙박하고 있던 사람들은 직원들의 지시에 따랐다.
한국의 '대충대충'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텍사스주의 교포 케일리 신(28) 씨는 "몇 주 전 미국에 있는 한국 조선소와 거래 과정에서 더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했다. 그런데 한국 업체는 '우리가 당신네 회사와 몇 년째 일해서 아는데, 이 정도 정보면 충분히 퀄리티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냥 넘겼다"고 했다. 그는 "미국 회사라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모든 과정을 기록해가며 처리한다. 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추후 감사에서 모두 드러나는데 한국 회사는 경험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외국인들의 이 같은 태도는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을 해치면 안 된다는 의식에서 나온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출신 유학생 말리크(20) 씨는 "미국에서는 안전수칙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안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고, 다른 이가 안전수칙을 어기면 그 피해가 다시 내게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 누구나 안전부터 확인한다"고 했다.
영남대 사회학과 백승대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교통법규도 잘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원칙을 무시하는 심리와 행동이 일상화돼 있다"고 했다. 그는 "사고가 안 터지면 눈감고 넘어가고 사고가 터지면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 사회"라며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대 박광길 초빙교수(소방방재청 설립 멤버)는 "사람들은 안전 교육 등 재난안전관리를 단순히 소비로 생각하다 보니 소홀히 한다"며 "안전관리를 돈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방재안전산업을 적극 키워야 한다"고 했다.
◆상황'심리 고려한 훈련 돼야
안전과 관련한 교육'훈련에도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대충 한다거나 시간만 때우고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천편일률적인 훈련 방식을 대수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는 안전과 관련된 매뉴얼이 모두 3천 개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교육이나 훈련 등이 시나리오대로 정형화돼 있고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대 사회학과 노진철 교수(국가위기관리학회장)는 "우리나라 훈련을 보면 단순히 사람들을 동원해 모의상황을 설정해놓고 실습하듯이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한다. 하지만 재난은 예측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피해자들이 당황하게 되고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노 교수는 "토론을 하든지 현장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든지 사례 중심으로 훈련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난 상황은 예측 불허이기 때문에 매 순간 당사자의 판단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실제 상황을 보여주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논의하면서 함께 해결책은 찾는 것이 필요하다.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도 "실제 재난은 여러 변수가 있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정형화된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 도중 미리 예시하지 않은 시나리오를 불쑥불쑥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했다.
대구대 박광길 교수도 '재난심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재난심리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로 이를 잘 파악해 매뉴얼 제작 및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포복을 하고 입을 막은 채 직원을 따라 비상구로 탈출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대처법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위급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뛰게 되는데 이를 고려해 매뉴얼이나 시설을 갖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박 교수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황별 교육이나 훈련을 철저히 하고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성인 대상으로는 재난심리를 고려한 매뉴얼을 만들고 이에 맞춰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재난에 대한 기록을 철저하게 남기고 이를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북대 건축학부 홍원화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 등 재난 선진국들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일반인들도 실시간으로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해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담당 공무원만이 재난 관련 백서를 갖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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