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諷刺)와 독설(毒舌)은 어떤 현상이나 사람을 비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풍자는 남의 결점을 빗대어 공격하는 것이고, 독설은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뜻한다. 둘 다 악의적이지만 풍자는 비유와 품격이 있고, 독설은 마음먹고 독한 말을 골라 아픈 곳을 후벼 파는 그야말로 돌직구다. 또한, 둘 다 보는 이로 하여금 속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지나치면 자신의 등을 찌르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로 상대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풍자꾼 가운데 장자(莊子)가 있다. 극단적인 무위(無爲)주의자로 허황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그의 글을 보면, 해학과 숨은 듯하지만 한 번만 되뇌면 곧장 알 만한 노골적인 야유가 번득인다.
혜자가 박나무에 대해 불평했다.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는데 물을 담으니 무거워 못 들겠고, 쪼개 바가지를 만들려니 평평하고 얕아 쓸모가 없어 결국 깨뜨려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장자는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들었다는 송나라 사람 이야기를 예로 들며 그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물에 띄워 즐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커서 쓸모가 없다고 불평하느냐며 쑥과 같은 마음(蓬之心)이라고 비꼰다. 척박한 땅에 비뚤게 자라는 쑥과 같이 속이 꼬이고 생각은 좁다는 뜻이다. 이쯤이면 '돌머리에 마음은 밴댕이 속보다 좁은 작자야, 니 틀이 그 수준밖에 안 되니 큰 쓰임을 알 턱이 있나'라는 돌직구나 다름없다.
그래도 장자는 비유로 넌지시 비난하는 탓에 대놓고 화를 냈다가는 그야말로 밴댕이 속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속만 부글부글 끓일 뿐이다. 반면 독설은 직접적인 탓에 아무리 옳은 말도 반발을 산다. 더구나 유언비어거나 뒤틀리고 그릇된 신념에 바탕한 독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째다. 이번 참사는 사고를 낸 해운사나 사고 발생지의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여느 참사와 다르다. 예방도 못 하고, 재난구조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져 대응을 제대로 못 한 정부 책임의 국가적 참사다. 이는 사고 초기 구조자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생명도 못 구한 지금까지의 결과에서 잘 나타난다.
이런 정부는 어떤 말로도 옹호하기 어렵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끽소리 않고 맞아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희생자와 유가족, 이 참사에 가슴 아파하는 많은 국민에게 독설을 퍼붓는 유명 인사가 많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목소리는 분명히 아니고, 높은 곳의 어느 분에게 알아달라고 외치는 충성 경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강도도 세고, 어떤 것은 독설을 넘어 저주에 가깝다.
이미 몇몇 네티즌은 유언비어 날조, 희생자와 유가족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됐거나 조사 중이고, 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SNS에 올린 국회의원 등도 조사를 받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거나 말 몇 마디, 글 몇 줄 썼다가 자리를 잃은 인사도 있다. 안전행정부 국장은 참사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해경 간부는 '해경이 뭘 잘못했느냐'고 반발하다가, 서울의 한 사립대 겸임교수와 KBS 보도국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석에서 한 말이 빌미가 돼 사직했다.
여론의 숱한 비난의 결과물이지만 그나마 사직한 사람은 오히려 양심적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행동 한 번 잘못했다고) '사형을 시켜야 할지 무기징역을 시켜야 할지'라며 국민의 감정을 비아냥거리고, 보훈청장은 '우리나라는 지금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며 때아닌 정권 방패막이에 나서기도 했다. 독설 수준에도 못 끼이는 헛소리를 통해서다.
최고의 압권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수락연설 도중 보인 정몽준 씨의 눈물이었다. 선거철만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받아들일 뻔한 그 눈물 뒤에는 이웃의 참사에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많은 국민을 미개인으로 만든 아들과 부인이 있다. 또, 그 뒤에는 기본적인 제가(齊家)도 안 된 인사를 '개화된' 선진국을 자임하는 대한민국 수도의 시장 후보로 뽑은 새누리당이 있다. 맨 뒤에는 '알조'인 당을 집권 여당으로 뽑은 국민이 있다. 19살짜리 재수생으로부터 들은 '미개한 나라, 미개한 국민'이라는 말이 풍자나 독설, 헛소리가 아닌 직설(直說)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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