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은 어느 촌락에서 잠시 훈장을 하며 겨울을 지낸 적이 있다. 그런데 열심히 가르친 만큼 학동이 글공부를 따라오지 못하는데도, 부모들이란 그저 못난 자식 탓하기보다는 훈장 나무라기가 일쑤였다. 그는 훈장생활을 털고 서당을 나서면서 시 한 수를 남겼다.
'세상에 누가 훈장을 좋은 직업이라 했던가, 연기도 없이 마음에 열불이 저절로 생긴다, 하늘 천 따지 하다가 청춘이 가고, 시부를 읊조리다 백발이 되었네. 비록 잘해도 칭찬 듣기 어렵고, 잠깐만 벗어나면 시비하는 소리로다, 손바닥 안 보석인양 천금 같은 내 자식을, 종아리 쳐서라도 가르쳐 달라는 말이 진정이던가.'
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책 '조선 전문가의 일생'에는 군사부일체를 강조하던 조선 사회에서도 훈장은 힘없고 배고픈 직업이었다고 소개한다. 더구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 몰락한 양반들이 너도나도 훈장을 업으로 삼았고, 서당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죽하면 훈장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설경(舌耕)이라 자조했을까. '혀로 밭갈이하는 무리' 즉 '입으로 지식을 팔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딱한 처지'를 표현한 것이다.
글로벌 교육 기관인 바르키 GEMS 재단이 근년에 발표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비롯한 21개 주요 국가의 교사 위상지수를 새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감출 길이 없다. 우리나라 교사는 중국, 그리스, 터키에 이어 4위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으며, 연봉 또한 싱가포르, 미국에 이은 세 번째로 일본, 독일, 스위스, 영국 등을 앞질렀다.
반면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한다'라는 응답률은 한국이 최하위를 기록했고, '교사의 학업수행 신뢰도'도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자녀가 교사가 되도록 권유하겠다'라는 답변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실제 수능 고득점자가 아니면 교육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 또한 이를 방증한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 교육현장은 모순(矛盾)과 당착(撞着)의 점철이다. 삶은 무척이나 풍족해졌는데, 교직을 성직으로 여기는 교사도 스승을 임금과 부모와 한몸처럼(君師父一體) 존경하는 학생도 드문 시절이다. 김삿갓이 오늘 스승의 날에 환생한다면 어떤 시 한 수를 적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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