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담소를 즐기고 있을 때, 보리의 사료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아빠의 연락을 받았다. 평소엔 주로 인터넷으로 동물용품을 구매하던 터라 어쩔까 잠시 고민하다 행여나 배송에 차질이 생겨 생각보다 시일이 더 오래 걸리면 사료가 동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직접 사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약속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반려동물 가게를 봤던 것이 떠올랐고, 내 어렴풋한 기억을 좇아 잠시 헤맨 끝에 그 가게를 찾아냈다. 하지만 도착한 가게 안에서 사료를 살펴보다 난감해졌다. 지난 8년간 수차례 고민하고 알아본 터라 이미 어떤 사료가 좋을지 잘 알고 있는 고양이 사료와 달리 강아지 사료의 경우 내가 아는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사고 싶진 않았기에 눈앞에 펼쳐진 여러 종류의 개 사료를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에 봉착했다. 3개월령의 강아지가 먹을 만한 좋은 사료는 어떤 것이냐는 내 질문에 직원은 대뜸 '강아지 종이 뭐예요?'라며 되묻는 것이 아닌가. '그냥 강아지예요'라고 대답하고 직원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는 다시 가게를 나서는 순간에도 '강아지의 품종이 사료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할까?'란 의문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물론 짧은 다리에 비해 긴 허리 때문에 허리디스크가 잘 걸린다는 닥스훈트처럼 개개의 품종별 특성에 따라 좀 더 필요한 영양소라든가, 좀 더 주의해야 할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고양이나 강아지의 품종에 따라 성분에 조금씩 차이를 둔 사료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료는 일부일 뿐이고 나의 경우에는 그보다는 더 좋은 성분과 더 좋은 재료와 비율로 구성된 사료를 찾는 데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품종별 사료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직원은 단순히 품종별 사료를 추천해 주기 위해 했던 질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 상황에 대한 나의 지나친 확대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직원의 한마디에서 '품종'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의 일면이 떠올라 조금은 씁쓸했다.
사실 보리와 달리 우리 집 두 마리의 고양이는 각기 다른 품종이다. 앨리샤의 경우에는 알레르기를 덜 유발한다는 네바 마스커레이드 품종의 특성 때문에 좀 더 눈에 들어왔고 체셔는 품종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털이 길고 풍성한' 동물을 좋아하던 내 취향 때문에 같이 살고 있다. 하여튼 품종을 따지기에 앞서서 녀석들은 그냥 우리 집 '고양이'다. 우리 집 강아지 보리가 어린 '개'이듯 말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페르시안 특유의 숱이 많고 긴 털을 자랑하는 체셔가 털의 무게 때문인지 얌전한 편이라면, 풍성하긴 하지만 가늘고 숱이 적은 털을 가진 앨리샤는 그에 비해 좀 더 발랄하고 잘 뛰어다닌다. 그리고 그 둘에 비해 몹시 털이 짧고 다리가 늘씬한 보리는 고양이들과 비교하면 정신없을 정도로 활동량이 많고 뜀박질을 좋아한다.
이처럼 개나 고양이는 품종에 따라 꽤나 차이 나는 외향과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자신에 맞는 각기 다른 품종의 반려동물을 찾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품종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 극단적인 번식장이나 종묘, 종견 문제는 결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지양되어야 할 부분이다. 품종이 좋든 어떻든 간에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반려동물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반려인의 삶이 더 건강하고 행복함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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