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들을 데리고 봄기운을 즐기고 돌아왔던 오후였다.
하루를 정리할 즈음 나의 휴대전화가 가방에 없음을 확인하고 하루의 기억을 되돌리고 있었다. 아차, 주차장으로 갔던 남편과 통화를 하고 난 이후 가방에 넣었던 것까지의 기억이 끝이었다. '분명히 가방에 넣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혹시 누가 가지고 갔나? 어디에 떨어졌나? 누가 가지고 있다면 전화를 받을텐데….' 한순간 여러 가지 생각과 칠칠치 못했던 나 자신을 탓하며 마냥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 중년 아저씨의 굵직하고 어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받고 계신 휴대전화기 주인인데요."
"아 그렇십니꺼? 안 그래도 전화도 계속 오고 하는데 제가 제 일이 있어서 못 받았습니더."
"아~ 그러셨구나. 죄송하지만 계신 곳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지러 가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집이 어딥니꺼? 내가 차가 있으니까 집을 말해주면 갖다 드리겠심더."
"예? 아, 여긴 다사입니다만…."
"아, 그래요? 마침 다사 근처에 가는데 잘 됐네. 내일 그리로 갈 거니까 주소를 불러 주든지 아니면 연락처나 하나 주이소."
주소까지 불러주긴 왠지 찜찜해 대실역 근처 대구은행 앞에서 4시쯤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을 잡은 후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간다는데 왜 굳이 온다고 하시는지? 사례금을 많이 바라나? 목소리가 좀 무서운데?'
결국 나는 혼자 나가기가 무서워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 역시 사람도 무섭고 세상도 무서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기꺼이 약속 장소로 동행해 주었다. 나의 주머니엔 분명 적정의 사례금을 바랄 것이란 확신에 만원짜리 3장이 들어 있었다. 약속 시간에서 10여 분이 흐르고 나서 트럭에서 내린 검은 얼굴의 아저씨 한 분이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직감으로 그 아저씨께 천천히 다가갔다.
"저, 아저씨, 혹시 휴대전화 찾아주러 오신…."
"아~ 맞심더. 아줌마꺼 이거 맞습니꺼?"
"맞네요, 감사합니다.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고…."
"아닙니더. 내가 저 성주에 일하러 이 길을 왔다갔다 많이 해가 괜찮십니더."
검은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 모습으로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셨다.
"저… 아저씨, 사례가 적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거…."
"예? 아이고~ 아이고~ 괜찮습니더. 지나가는 길이라 카니까. 저는 가겠심더."
순간,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알아챈 아저씨의 절뚝거리는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면서, 아저씨가 올라탄 삽 등 많은 공구가 실린 파란색 트럭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나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이 정도면 여기까지 온 기름값 정도로 부족하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과 내 손이 부끄러웠다. 열심히 사시는 분이….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서 호의를 베푸시는 분이 아직은 많이 있구나! 크지도 않은 돈 3만원을 단호히 거절하시는 아저씨는 참 바르고 정직하신 분이겠구나! 늘 건강하셨으면….
그 아저씨는, 각박한 뉴스거리 속에 세상이 무섭고 비리가 많음을 은연중에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또 한 번 깨우쳐 주셨다. 섣부른 선입견을 가지지 말 것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의존하며 판단하지 말 것과, 많고 적고를 떠나 정당하지 않은 대가에 대한 유혹에 흔들리지 말 것! 쏟아지는 세상의 많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난 내가 겪은 그 일과 아저씨를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믿고 살 만하지 않은가…. 나도 바르고 소신 있는 어른으로 나이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김혜림(달성군 다사읍 대실역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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