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솔밭댁, 어디 가요?

마당에 주차해 놓은 차 유리에 송홧가루가 노란빛으로 앉는 5월이다. 남편과 내가 이 집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주춤대는 우리를 당겨 맞아 준 것은 소나무였다. 아침 해와 함께 집 유리창에 비치는 적송들을 보는 일은 어느 먼 바닷가에서 해맞이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벅차다. 우리 집에 처음 와보는 사람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독대 옆에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일곱 그루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숯골로 온 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강아지 산책을 시키기 위해 잎이 무성한 정자나무 앞을 지날 때였다. 친구 분과 담소를 나누시던 노인회장님이 "솔밭댁이, 어디 가요?" 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그러곤 빙그레 웃으시며 "소나무가 많은 집에 사니 앞으로 '솔밭댁'으로 부르려 하는데 어때요?" 하신다. 아파트에 살 때 나는 307호 아줌마, 혹은 307호 새댁으로 불렸다. 관리실에 전화할 일이 있어서 내가 나를 알릴 때도 307호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곳에서 그동안 '새로 이사 온 집'으로만 불렸던 내게 '솔밭댁'이라는 마음에 쏙 드는 새 이름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 뒤부터 마을 어르신들은 나를 볼 때마다 "솔밭댁이, 밥 묵었나?" "솔밭댁이, 회관에 놀러 가자"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앞으로 우리랑 오래오래 정답게 살자'는 뜻인 것 같아서 이곳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풀들을 뭉뚱그려 잡초라 불렀던 내가 그 풀들에도 딱 맞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이름을 찾아 부르며 의미를 헤아려 보게 된 것도 마을에서 새 이름을 얻게 되면서부터다.

며칠 전에 이곳 면소재지에서 부녀회원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다. 처음 보는 분들이 많아서 쭈뼛거리며 서 있는 내게 어떤 분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신다. 반가운 마음에 "숯골에 사는…"이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분이 먼저 "아하, 솔밭댁이구먼" 해서 깜짝 놀랐다. 작은 만남이나 소식도 흘려듣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 이곳 분들의 마음이었다.

시내에서 살 때는 개인의 자유와 공간이 존중받고 있어서 좋다고 느끼는 반면, 묵직한 아파트 철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외부와 나 사이에 놓인 두꺼운 벽을 느끼기도 했다. 같은 아파트에서 오래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낯을 익혔지만 굳이 이름을 나누지 않았기에 마주 지나칠 때면 어색한 눈인사만 서로 나눌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대문이 없는 집이 많고, 있더라도 늘 열어놓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사 오자마자 가입한 부녀회는 좀 더 쉽게 마을공동체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했다. 한동안은 서먹했을 사이들이 부녀회를 통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일체감으로 둥글어졌다. 나는 온전히 개인이면서 마을공동체의 일원이고 나아가서는 모든 자연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하게 되었다.

황선미 작가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의 닭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알을 품고 싶어 하는 용기 있는 닭이 주인공이다. 스스로 이름을 짓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잎싹의 이야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숯골에 와서 새로 갖게 된 이름인 '솔밭댁'을 혼자 가만히 불러본다. 이 이름이 내게로 온 의미는 이곳에서 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살라는 말인 것도 같고, 소나무의 짙은 그늘처럼 다른 이들의 땀을 식혀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도 같다.

또 소나무 아래에 있는 된장독에 송홧가루가 들어가서 더 맛있는 된장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크게 드러나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더 나은 시너지 효과를 내라는 말인 것도 같다. 이름은 내가 나임을 알게 하는 정체성인 동시에 모든 관계의 시작이기도 하다. 새로 갖게 된 '솔밭댁'이라는 이름에서 앞으로 내가 여기에서 살아갈 푸른 길을 본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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