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꼬맹이들은 애니메이션이 키운다. '뽀로로'만 틀어주면 장난과 울음을 뚝 그치고 TV 앞에 얌전히 앉아 귀엽고 어여쁜 목석이 된다. 육아에 서툰 수많은 젊은 부모들이 한숨 돌리는 시간이란다. 그러니 TV가 바보상자라는 주장은 잠시 유예하자. 이런 역할을 뽀로로 이후에는 '로보카 폴리' '꼬마버스 타요' '라바'도 하고 있다. 이들은 또 각종 유아용품과 장난감에 그려져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비슷했다. 다만 누리는 환경이 지금처럼 풍족하지는 못했고,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영화'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아이들은 일요일 아침만 되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 TV에서 틀어주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고, 점심 무렵 송해 할아버지의 전국노래자랑 대상 수상자 앙코르 무대가 끝이 나면 '달려라 하니'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날아라 슈퍼보드' 등을 시청했다. 평일에도 TV에서 오후 6시 전후로 만화영화를 틀어줬는데 요즘 어머님들이 일일연속극 챙겨보듯 봤다. 초등학생 때 TV 만화영화 편성표를 줄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어린이날, 방구석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한 전설의 만화영화 OST 음반을 발견해 다시 듣는 시간도 마련해줬다. '로보트 태권브이' 1탄(1976)'2탄 우주작전(1976)'3탄 수중특공대(1977) OST다. LP로 있던 음반을 복각해 2007년 CD로 재발매한 것이다.
세 음반은 단순히 만화영화 주제가와 배경음악만 수록하지 않았다. 극의 줄거리 흐름대로 대사와 음향까지 수록한 일종의 '듣는' 영화다. 대사만 드러나 있는 부분은 국내 힙합계의 디제이들이 발굴해 스크래치(턴테이블 위에 놓인 LP판을 손으로 조작해 반복, 왜곡 등의 음향 효과를 주는 기법) 샘플로 애용하기도 했다. 만화영화 OST라는 타이틀을 빼고 들어도 수록곡들은 1970년대에 국내에서 발표된 소울'훵크 곡들 중에서 수준급에 든다.
주제가는 만화영화인 만큼 꿈나무들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영화 및 음반에서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로보트 태권브이'는 당시 중학생이던 최호섭 군이, '깡통로보트의 노래'는 호섭 군의 친동생 귀섭 군이, '메리의 노래'는 중학생 이지혜 양이 불렀다. 호섭 군은 커서 가요 명곡 '세월이 가면'(1988)을 부르는 가수가 된다.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수호하는 노랫말들 사이에서 2탄 수록곡 '메리의 노래'가 특히 귓속에 맴돈다. 메리는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아버지, 카프 박사가 아니라 이를 저지하려는 친구, 훈의 편에 선다. 자신이 인조인간이라는 비밀을 알고는 마음고생도 많이 한다. 결국 해피엔딩이지만 그 과정은 여느 만화영화 수준을 뛰어넘는 굴곡의 여정이다. 그래서 메리의 노래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우며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떤 것일까
분홍색일까 파란색일까 눈에 보이는 것일까
기쁨이란 무엇일까 어떤 것일까
둥근 것일까 모난 것일까 손에 잡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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