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화가 예찬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동자에 피멍이 덮여 있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전날 저녁, 대학 동문 '밴드'에서 충격적인 글을 접해서 그런 것 같다. 글을 읽는 순간, 심장이 뛰어 도저히 다 읽을 수가 없어서 그만 나와 버렸다. 계속 읽다가는 내 심장이 멎을 것 같아서, 한동안 밴드를 멀리했다.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나의 모천(母川)이었던 동양화과가 폐과(廢科) 결정이 되었다고 동문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나의 침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나흘 만에 다시 밴드에 들어갔다. 그 다음 날, 또 다른 한쪽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이젠 나를 약하게 낳아준 부모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왔다.

화가는 천성이 약하고 예민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또 강단이 약하기 때문에 그림 이외의 언쟁은 피한다. 어쩌면 화가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예술은 속전속결로 성과를 얻기보다 길게는 한 세대를 넘겨야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예술은 기다림의 미학인 것이다.

화가는 안락한 삶과는 거리를 둔다. 창의력을 떨어뜨린다고 믿었기에 경제적인 부와 편안한 삶을 경계했다. 물론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필요조건임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화가는 돈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한 점의 정신적 가치를 위해 자신을 바친다.

옛날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실천한 화가가 있었다. 중국 원나라 때의 화가 예찬(倪瓚, 1301~74)이 그 인물이다. 그는 대부호의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큰 재산을 물려받는다. 하지만 재산보다 예술을 택한다. 오로지 "예술가는 가난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약간의 돈과 배 한 척만 두고 모든 재산을 일가친척들에게 나누어준다. 말년에는 지독한 가난으로 고통스러운 여생을 보냈음에도 결코 붓을 꺾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후학들에게 영원한 등불이 되었다.

대표작인 '용슬재도'(容膝齋圖)는 먹 속에 고결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필(筆) 속에 뜻이 빛나는 그림이다. 정갈하고 고즈넉하여 정적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평소 배 한 척에 의탁한 채 강호를 누비며 청빈한 삶을 살았기에 이런 걸작이 가능했다.

나도 한때 '예찬 마니아'였다. 화가라면 그 고결한 예술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그를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그를 '예찬'해서, 그의 작품을 모사하는 수업이 있을 정도다.

예술가는 역사의 혈관에 더운 피를 공급하는 에너자이저다. 문화가 없는 사회는 생기 잃은 낙엽에 불과하다. 전문적인 교육과정은 올바른 예술가를 배출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지금 동문회 밴드는 뜨겁다. 바람 앞의 등불이 된 예술의 산실을 살리기 위한 함성으로 가득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할 때다.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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