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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읽기] 기억에 사라졌거나 아로새겨진 '역사의 한 풍경'…『키스와 바나나, 한밤

주목받는 국내 작가 26인이 한겨레출판 문학 웹진
주목받는 국내 작가 26인이 한겨레출판 문학 웹진 '한판'에 연재한 단편소설들을 모아 역사테마 소설집 두 권으로 펴냈다.

키스와 바나나, 한밤의 산행 / 황현진, 조두진, 박성원 등 26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키스와 바나나

13인의 작가들은 역사의 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잃었거나, 잊혔거나, 사라졌거나, 스러져간 사람과 사건들을 탐사했다. 박진 문학평론가는 "작가들은 역사적 사실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상상력의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사실의 역사가 아닌 가능성의 역사를 썼다"고 평했다.

일반적으로 독자는 작가가 어느 시대의 어떤 인물과 무슨 사건을 다뤘는지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장면을 지금 불러낸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 이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표제작 '키스와 바나나'(황현진)는 베트남 전쟁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전쟁 고아이자 베트남전 참전 군인인 '키스'를 통해 전쟁의 외상적 상처를 바라보는 것에 집중한다. '첫사랑'(조두진)은 일제강점기 대구의 한 일본인 중학교를 찾아간다. 당시 식민지 2세로 살아간 재조(在朝) 일본인들의 죄의식과 모순적 감정에 주목한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 현장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눈에 띈다. '연애의 실질'(주원규)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의 사택으로, '만년필'(조영아)은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으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강병융)는 이명박정권 시절 촛불집회 현장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408쪽, 1만3천500원.

◆한밤의 산행

또 다른 13인의 작가들은 역사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기억'이라는 현상과 행위에 집중했다. 작가의 기억이 독자의 기억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집에 대해 "기억을 주제로 완성한 변주곡집"이라고 평했다.

표제작 '한밤의 산행'(김혜진)은 어리숙한 두 철거 용역과 아르바이트 시민운동가가 끝없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가 기억에서 배제했던 수많은 사건을 불러온다.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박성원)는 장발 단속과 무단 구금, 긴급조치 1호, 간첩단 사건 등으로 얼룩진 1970년대를 작가의 기억에서 끄집어내 풀어낸다. '내 사람이여'(조수경)는 가수 김광석의 죽음과 그의 노래를 통해 죽은 연인에 대한 한 여자의 기억과 죽은 남편에 대한 또 다른 여자의 기억을 번갈아 보여준다. 결국은 한 남자에게 투영되는 두 개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400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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