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名 건축여행] <20>대구 동성로 '교보빌딩'

육중한 城門을 연상시키는 출입구…단순하지만 강렬한 대칭미

동성로를 따라 대구역으로 가다 보면 횡으로 난 대로를 만나면서 멈추게 된다. 국채보상로를 따라 대로변에 세워진 빌딩 속에서 도심 한복판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구는 상대적으로 고층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새로 조성된 동대구로, 범어네거리 및 반월당네거리 교차로를 제외하면 국채보상로와 동성로가 만나는 이곳이 그중 가장 도시화된 장소일 것이다.

여기서 15, 16층의 고층건물 사이에서 옅은 붉은색과 회색 화강석을 주재료로 한 16층의 교보빌딩과 만나게 된다. 건축가는 스위스의 타치노 주 루가노를 중심으로 1970년대에 전원주택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인 건축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8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 박물관, 미술관, 성당 등의 건축물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이다.

한국과는 서울의 리움미술관, 강남의 교보빌딩, 그리고 부산과 대구에 교보빌딩 등을 설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초기에는 르꼬르뷔제와 루이스칸의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을 받았으며, 국제주의 양식과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갖게 되면서 포스트모던적인 건축 어휘를 전략으로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던 건축가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보편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합리주의와 국제주의에 편승하면서 인간의 감성과 개별적인 특수성은 외면될 수밖에 없었다. 보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성과 역사성을 드러내는 건축적 방법을 취하게 된다. 이후 그는 타치노의 지역성에 머물지 않고 국제주의적 건축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을 한다.

교보빌딩이 주변의 고층건축물과는 분명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음은 외형에서 직감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도시 가로에 접하는 상업건축물의 저층부는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서로를 노출함에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교보빌딩은 저층부를 두터운 외벽과 함께 최소의 창으로 만들어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따라서 저층부는 성벽과도 같은 육중한 외벽으로 인해 보행자들과 차단되어 있으며, 현대건축의 가벼움과 투명성과 대비된 무거움과 견고함의 전통적 미학에 따른 형태를 취한다. 마치 옛 사진에서의 영남제일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가운데의 거대한 개구부는 성 안으로의 진입이 성문으로만 제한되듯이 강렬한 흡입력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대부분의 오피스건축물이 저층부를 커튼월의 유리로 처리함으로써 건물 내부의 액티비티를 노출하고 있음에 비교해서, 여기에서는 반대되는 방법을 취하고 있음에도 저층부에서의 진입은 매우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교보빌딩의 파사드(건축물의 주 출입구가 있는 정면)는 수평성, 견고함과 부드러운 질감의 색채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간결한 수평성을 강조한 2가지 색채의 화강암 외벽 수평띠와 고전적이고 구상적인 재료의 사용, 세련된 비례감과 함께 부분적인 패턴의 변화에 따라 모던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교보빌딩에서도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대칭적이고 기념비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단순한 형태만큼 강렬한 표현의지를 담고 있으며, 대칭적 형태는 시선의 집중을 유도하며, 스쳐 지나가는 가로에서 멈추어 서게 한다.

건축은 땅에 뿌리내림으로써 장소성과 풍토성을 강조한다. '건축이란 그 장소를 설계하는 것이며, 장소를 변경시키는 행위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근대건축에서 상실되었던 장소성과 형태를 회복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간결하고 닫힌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함으로써 중심성을 부정하는 근대건축에 대항하고 있다.

교보빌딩의 파사드는 근대건축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를 부정하면서 외부에서 내부로의 전이적 감각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주변 환경에 대한 표현의 문제임을 재인식하게 한다.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 벽돌이나 석재 등의 전통적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재료에 내재하는 구상성과 시간성의 감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일관되게 조적조의 재료만을 고집하고 있으나, 철근콘크리트조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 외부마감으로서만 벽돌 및 석재의 마감재를 사용하고 있다. 나아가서 벽돌 및 석재를 이용한 PC판을 주재료로 사용하면서 조적조의 미학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축물의 정면을 들어서면 3층의 오픈된 수직공간인 홀을 만나게 되고 사각형의 평면 속에 놓인 사각형의 중앙 코아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4층에서 16층까지의 사무실로 이르게 된다. 우측의 출입구를 통해서 서점에 들어서게 되면 별도로 놓인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서 3층까지 연결되고 책들과 만나게 된다. 간결한 건축형태에 따른 명쾌한 동선은 요즈음의 상업건축물에서 자주 나타나는 복잡한 형태와 동선과 비교해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건물 밖으로 나와 길 건너 먼 곳에서 되돌아본다. 외부 파사드에서의 저층부의 닫힌 상자와 구분해서, 상층부는 4개의 매스로 나뉘어 있다. 그 사이에는 유리거튼월로 연결되어 있어, 내부평면에서의 닫힌 코어 부분과 4구역으로 나뉜 빈 사무공간과는 내외부에서 대조되고 있다. 출입구의 철골 트러스와 유리 캐노피, 최상층부의 철골 트러스는 조적조의 석재 디테일의 세련됨과 함께 현대건축물로서의 미학을 보여줌에 충분하다.

건축은 기존의 도시적 배경에 새로운 건축적 행위를 함으로서 변증법적인 관계를 가지게 하는 주체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도심에서 만나는 상업건축물에서 근대건축에서 잃어버린 장소성과 시간성의 담론을 야기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날 수 있음은 행복한 경험이다.

도현학 글 영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진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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