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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굴 상처로 얼룩진 고분군…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장

대구 칠곡 주민들이 즐겨 찾는 함지산. 시민들은 열심히 산을 오르지만, 그곳에 삼국시대의 큰 고분 150여 기가 군집을 이룬 사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 커다란 봉분마다 유물을 훔치려고 파헤친 도굴의 흔적이 파여 있음은 더욱 알지 못한다.

함지산의 '구암동 고분군'은 도굴 생채기에 파인 채 흉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는 몇 해 전부터 어린 학생들과 함께 '내 고장 유적탐험대' 활동으로 이곳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내 고장의 유적을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는 각오로 현장학습을 하곤 했지만, 아직 우리 기성세대는 도굴되어 방치된 고분을 지켜만 보고 있다.

도굴은 고분 속의 유물을 훔치려고 파헤치는 것으로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오늘날 발굴조사가 역사 연구를 위한 학술자료를 찾으려고 국가의 정식 허가와 고고학의 방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과는 목적과 방법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 도굴로 말미암은 학술자료의 망실로 인한 폐해는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의 한 장을 찢어 내버리는 행위와 다름없다.

대구에서 100여 기 이상의 봉토분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고분군은 3곳에 불과하다. 사적 제262호의 불로동 고분군, 칠곡의 구암동 고분군, 화원의 성산리 고분군이 그에 해당한다. 이외에 지금의 달성공원(사실은 달성 토성임) 주위에 달성고분군(내당'비산동 고분군)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몇 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져 일부 유물이 대구박물관에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구암동 고분군과 성산리 고분군은 도굴의 흔적과 함께 방치되고 있다. 화원의 성산리 고분군은 봉분의 풀베기 사업이 몇 해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전체 고분군을 복원'정비하기 위한 학술조사가 추진된다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늦었지만 이러한 고분군의 복원'정비를 위한 기초학술조사가 구암동 등 다른 고분군에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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