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국가개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어떻게 한 달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모두 슬픔과 분노로 가득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수준과 책임의식에 절망했고 부실한 초기대응은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분출됐다. 전형적인 안전 후진국의 민낯을 전 세계에 그대로 드러내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안전사고 사망자 수는 독일, 영국, 네덜란드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자 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안전수준은 후진국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번 참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와 정부가 안전의식과 안전교육에 무관심했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안전불감증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는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 수백 명의 인명피해를 가져 온 참사 모두 안전을 소홀히 한 대가였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러한 반복적인 대형 참사에도 사회의 안전의식과 정부의 대응능력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의 학습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학습능력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능력이다. 과거의 대형 사고로부터 제대로 학습을 하였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참사를 겪었는데도 안전관리시스템은 여전히 엉망이고 정부의 대응능력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진정 우리 사회와 정부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학습능력이 없단 말인가?

미국의 경영학자 크리스 아지리스는 조직구성원의 행동 및 대응 양식만을 수정해 가는 단일고리학습(single loop learning)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는 이중고리학습(double loop learning)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조직의 운영 규범 자체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조직을 지배하는 기본 규범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전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안전 관련 규칙, 프로그램, 업무절차의 개선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일고리학습으로 일관해 왔다.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실이 직접 관장하면서 부처 간 업무를 총괄 지휘'조정하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총리실 산하에 안전총괄 부서를 신설하는 조직 개편만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든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그리고 부조리와 비정상의 관행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이중고리학습이 절실하다.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실뿐만 아니라 정부운영시스템이 이렇게 총체적으로 무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분노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탐욕, 뿌리 깊은 관피아의 폐해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적폐를 보면서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와 정부의 운영방식에 대한 기본 규범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과 자리에서 국가개조를 선언한 것은 이러한 근본적인 해결책의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개조는 사회와 정부 운영의 기본 규범을 바꾸는 큰 변화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하다.

그런 점에서 국가개조는 신뢰를 상실한 관료 집단의 셀프 개혁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 중심의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여 공직사회 개혁, 관피아 척결, 비정상의 정상화, 안전사회 구축 등 국가개조에 필요한 과제를 국민의 입장에서 발굴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 위원회가 제안하는 과제를 우선순위에 따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관련 법안 통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국민 모두 국가개조 과정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주재복(한국지방행정연구원'지방조직분석진단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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