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이란 이름의'집착'… 의처증·의부증

의처증
의처증'의부증은 부부 사이를 좀먹는 망상장애의 한 유형이다. 배우자를 향한 칭찬과 격려, 존중과 인정은 의처증'의부증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계명대 동산병원 제공

A(55) 씨는 아내가 5년 전부터 직장상사와 바람을 피워왔다고 믿고 있다.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지만 A씨의 의심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다그쳐도 아내는 불륜 사실을 실토하지 않았다. 그는 증거를 찾기 위해 아내 옷의 냄새를 맡고 속옷을 검사했다. 직장 회식으로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내의 직장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헤어진 시간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3개월 전에는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A 씨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건 그가 백수이기 때문이다. IMF외환위기 여파로 실직한 그는 10여년 동안 여러 종류의 장사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7년 전부터 딱히 하는 일없이 아내에게 의지해 살고 있다. 하지만 A 씨에게 아내의 모든 행동은 의심스럽기만하다. 의심은 폭력으로 이어졌고, A씨는 가족들에 이끌려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다.

A씨의 병명은 '질투형 망상장애', 즉 의처증이었다.

◆ 끝없는 의심 폭력으로 이어져

망상은 교정이 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을 말한다. 의처증'의부증은 망상장애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배우자에 대한 의심이 논리적으로 체계화돼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증거나 이유도 수긍하지 않고 의심을 버리지 않는다. 망상 이외에 다른 사고체계나 인격은 멀쩡해 정상인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의처증'의부증은 전형적인 패턴이나 증상이 없다. 의심이 정교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부부 당사자의 얘기만 들어서는 망상인지 확인조차 힘들다. 때문에 망상 여부를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가족이나 지인 등 제3자를 통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생기면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증거를 들이밀어도 전혀 믿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왜곡된 사랑에서 싹트는 일반적인 질투와는 달리 질투망상은 상습적으로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아 압박하거나, 지독한 의심과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결혼 생활에서 상당수는 의처증'의부증을 갖고 있으면서 그냥 생활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나를 너무 많이 사랑하고 집착하는 성향이 있구나"하는 정도로 넘긴다. 결국 10년, 20년 간 가정 폭력에 시달리거나 직장 생활이 방해를 받다가 억눌렀던 화가 폭발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배우자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연애시기부터 조짐을 보이다가 결혼 후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들어서면 심각한 갈등으로 불거진다.

◆열등감이 망상으로 이어져

의처증'의부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임상학적으로는 뇌 속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게 원인이다. 도파민이 과하면 작은 일도 확대 해석하거나 망상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의심의 밑바닥에 열등감이 깔려 있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질투 망상이 생기기 쉽다. 열등감의 원인을 배우자로 돌리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실직으로 경제력을 잃었거나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인해 외모나 성기능에 문제가 생긴 경우, 알코올중독이나 성적인 열등감 때문에 망상이 생기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주부 B(56) 씨도 그런 경우였다. 사고 후유증으로 부부 관계가 뜸해지자 B씨는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성적인 열등감을 남편에게 투사한 셈이다. 불안에 휩싸인 B씨는 하루에도 수십차례나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극도로 초조해했다.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직장에도 수없이 전화를 했다. 감당할 수 없던 남편은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지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병원을 찾았다.

성장 과정에서 가족과 기본적인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은 게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망상 장애 환자들은 어렸을때 부모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거나 가정 폭력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가족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도 휘둘리지 않으려는 심리적인 성향을 보인다.

◆자존감과 신뢰 회복해야

의처증'의부증 환자들은 치료가 굉장히 어렵다. 자신이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고 치료에 냉담해 긴 시간과 치료자의 인내도 필요하다.

치료를 돕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심에 대해 비판하거나 동조해서는 안된다. 동조할 경우 비정상적인 의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 비판할 경우 상대방에게 경계심과 적개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긍정적인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환자의 비밀을 전적으로 지킨다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의처증'의부증의 경우에는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신뢰감을 쌓지 않으면 의사조차도 부정한 관계로 의심받는다. 의료진은 부부 상담 등으로 환자의 신뢰감을 충분히 얻은 뒤에 망상증을 치료하는 항정신성 약물을 처방하게 된다. 그 후 증상이 개선되기 시작하면 서서히 약물 투여량을 줄여가며 약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게 조정한다.

의처증'의부증으로 고통받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신뢰감이다. 부부 간에 생긴 작은 틈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 사고, 자녀 문제, 고부 갈등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넓어지고 깊어지다가 돌이킬 수 없이 붕괴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배우자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자주 칭찬하고 격려하며 배우자에게 자주 고맙다는 표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인 자존감도 키워야한다. 계명대 동산병원 김희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쉽게 의심에 빠지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뒷받침되어야 타인도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움말 김희철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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