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광복 조국에서도 옥살이한 독립운동가 조문기

'조선인 멸시를 규탄한다.'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이 지원하던 경기 화성 양지보통학교에 다니다 일장기를 들고 환영행사에 동원되곤 했던 시절, 외할아버지의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 이야기를 듣고 학교 친구들에게 태극기에 대해 설명하다 선생의 호된 꾸지람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을 다짐했던 소년 조문기(趙文紀). 일제 식민지배 속 1927년 오늘 태어나 1943년 일본의 한 회사에서 연수생으로 있던 시절, 조선인 멸시규탄 파업을 주도해 수배되는 등 핍박에도 일제에 맞섰다.

일본에서의 파업 주도 이후 국내로 들어온 뒤 1945년 5월 대일 투쟁을 위해 동지들과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조직했고 그해 7월엔 친일파 거물인 박춘금(朴春琴)이 만든 단체가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친일어용대회를 연다는 소식에 이를 막으려 폭탄을 터뜨려 집회를 무산시켰다. 이후 은신하면서 야학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광복을 맞았다.

그의 삶은 광복 이후에도 고단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투쟁 활동으로 투옥돼 고초를 당했다. 1959년엔 이승만 대통령 암살 및 정부전복 조작사건 연루로 또다시 곤욕을 치렀다. 이후 광복회 일과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맡아 친일청산에 나섰다. 2008년 삶을 마칠 때까지 편치 않았던 세월을 보낸 독립운동가였다. '슬픈 조국의 노래'란 회고록을 남겼으며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2008년 모란장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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