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랍인들 사이에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오늘날 사우디 아라비아의 서쪽에 있던 헤자즈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파이살 빈 후세인 빈 알리 알 하시미가 이끌었다. 파이살은 친영주의자로 외세에 기댔지만, 아랍 여러 세력의 갈등을 중재하는 외교적 능력과 카리스마를 지녀 아랍인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파이살은 1885년 오늘, 헤자즈의 유력자인 후사인 이븐 알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세 때 아버지가 헤자즈의 왕이 돼 오스만 튀르크에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영국군과 협력해 아랍 봉기군을 지휘했다. 1918년에 영국군과 연합해 오스만 튀르크 치하의 다마스쿠스를 함락, 시리아 국왕이 되었다. 아랍이 영국의 군사적 야망을 지지하면, 영국도 아랍 국가의 창설을 지지하겠다는 협정의 결과였다.
그러나 영국의 독주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가 개입, 전투를 걸어오자 패배해 1년 7개월 만에 왕좌에서 쫓겨났다. 이에 영국은 영향력을 확보한 이라크의 왕위에 그를 앉혔다. 파이살 1세였다. 그는 이라크에 정치적 연고가 없었으나 범아랍 지도자라는 명성 때문에 환영받았다. 12년간 재위하다 1933년에 45세로 사망했다. 이라크는 그가 죽기 1년 전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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