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차카게' 살지 말자!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긍정적 가치가 듬뿍 담겨 있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정적인 속뜻을 담아 은어처럼 쓰인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 말을 들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호갱님'으로 평가받는 듯해 언짢아지기 십상이다.

'착하다'는 요즘 '저렴하다' '좋다'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서 '착한 가격 업소'를 발굴'홍보하는가 하면 이동통신사들은 '착한 기변'(기기 변경)을 내세워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스트레스는 적으면서 안정성이 높은 일자리를 일컬어 '착한 직업'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프로야구 담당 기자는 결코 '착한 직업'은 아닐 듯싶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전에는 회사로, 오후에는 야구장으로 두 번 출근해야 한다. 물론 퇴근은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러나 육체적 피로보다 더 힘든 것은 애독자들의 남다른 애정과 눈높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30년 넘게 내공을 쌓은 팬들의 야구 지식은 종종 취재기자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2군 경기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는 일부 마니아들의 야구 열정은 감탄을 넘어 존경심까지 갖게 만든다. 기록을 잘못 인용하는 실수라도 저지른 날엔 따끔한 질책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담당 기자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도 '재야 고수'들의 훈수가 잇따랐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일부러 대여섯 곳이나 가봤다는 친구, 연간 수십 경기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본다는 친구들이라 제법 들을 만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대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대구경북 출신의 프랜차이즈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야구가 도시연고제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지역에서 야구를 배우고 성장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어야 흥행은 물론 지역민들의 자긍심 고취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착한' 애향심은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삼성의 베스트 나인(9)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 선수단에는 수도권'영호남은 물론 멀리 강원도'제주도 출신도 적지 않다. 릭 밴덴헐크, 제이디 마틴, 야먀이코 나바로 등 선수 3명과 카도쿠라 켄 투수 코치, 세리자와 유지 배터리 코치 등 외국인도 5명이나 된다. 네덜란드 출신 2년 차인 밴덴헐크는 지난겨울,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유럽에서 열린 야구교실에 삼성 유니폼을 입고 참가하는 등 대구 홍보에도 열심이다. '외인구단'의 활약이 프로야구 사상 첫 3년 연속 통합 우승이란 금자탑의 원동력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역의 프랜차이즈 정치인을 뽑는 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혈연'지연은 물론 학연'교연(敎緣'종교)까지 연줄이란 연줄은 총동원되기 마련이다. 한 표를 행사하기 전에 반드시 짚어봐야 할 사항은 선출될 선량(選良)이 진정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의리'라 쓰고 '으리'라 읽는 '끼리끼리 문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대표적 구악으로 떠오른 '관피아 논란'에서 진저리나도록 보지 않았나!

이제는 어리숙하기만 한 '착한' 유권자가 되지 말자. 그동안 '차카게' 찍어준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당선 이후 '차카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나쁜 정치인'이란 욕을 먹더라도 백년대계를 위해 자잘한 '으리'는 깨부수는 결단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어차피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동화에서나 있는 일 아닐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